'풍요 속의 빈곤'. 요즘 TV 시트콤을 두고 하는 말이다. MBC '스탠바이'에 이어 KBS '닥치고 패밀리', MBC '천 번째 남자' 등 시트콤이 방영중이지만 시청률은 고작 5, 6%대에 머물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9년 MBC '지붕뚫고 하이킥'이 시청률 20%를 넘나들던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사들이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시트콤으로 시간을 때운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프로그램이 시트콤 본연의 '풍자를 통한 현실 비판' 기능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4월부터 방송 중인 '스탠바이'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일상을 통해 '힘들지만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는 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기획의도를 표방했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닥치고 패밀리'는 중년 남녀의 재혼으로 결합한 두 가족이 가족애로 서로를 치료하는 과정을 담고, '천 번째 남자'는 인간이 되고 싶은 구미호의 눈을 통해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무게 있는 질문을 던진다.
문제는 제작진의 조급증이다. 캐릭터가 극중에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시청률을 높이려고 초반부터 에피소드 위주의 자잘한 웃음만 추구하면서 현실 풍자와 해학이 사라지고 시청자들이 시트콤을 외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난달 종영한 KBS '선녀가 필요해'와 중반을 넘어선 '스탠바이' 등이 대표적이다.
드라마의 시트콤화도 시트콤이 고전을 겪는 이유로 꼽힌다. KBS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비롯한 드라마들이 상황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등 시트콤적 요소를 적극 도입하면서 시청자들이 굳이 시트콤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시트콤과 일반 드라마의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시트콤은 특유의 희화화와 비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