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의 승낙을 받고 낙태 시술을 한 조산사(분만을 돕는 의료인)를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형법 270조 1항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이 23일 가까스로 합헌 결정됐다. 사건은 표면적으로 종결됐지만 재판관 의견이 4대 4가 되면서 낙태에 대한 헌재의 통일된 의견이 제시되지 않아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낙태 처벌 문제에 대해 합헌 판단을 내린 재판관은 김종대, 민형기, 박한철, 이정미 재판관이다. 이들은 태아의 생명에 대한 기본권이 인정되는 시점을 자궁에 수정란이 착상한 시점으로 전제, 임신 초기부터 어떤 형태의 낙태도 안 된다고 판단했다. 또 임산부 본인이 낙태를 결정할 권리보다 모든 기본권의 기본이 되는 생명권이 더 공익적으로 필요하다고 봤다. 4명의 재판관은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낙태를 실시한 조산사에 대한 징역형 처벌은 형벌 간 비례 원칙을 위배할 정도로 위헌적이지 않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낙태 처벌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한 이강국,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 재판관은 태아의 생명권은 임신 이후 13~24주에 해당되는 임신 중기부터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들은 낙태의 주체가 누구이든 임신 초기(1~12주)에는 낙태가 가능하다고 봤다. 조산사 징역형 처벌에 대해서도 임신 초기 낙태를 인정하는 만큼 처벌 자체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날 낙태 처벌이 합헌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법조계 일각에서는 "헌재가 재판관 궐석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 굳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인 낙태 문제를 시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현행 헌법재판소법은 9명의 재판관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6명 이상이 위헌으로 판단해야 특정 법률과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헌재는 지난해 7월 이후 조대현 전 재판관 후임이 정치권의 반대로 결정되지 않아 1년이 넘도록 8명의 재판관으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는 "1명의 재판관이 더 있어 5대 4의 결정이 났다면, 적어도 낙태 논란에 대한 담론이 향후 흘러갈 방향이라도 설정됐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김종대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재판관 4명은 9월에 퇴임한다. 이들은 공교롭게 합헌(김종대 민형기) 대 위헌(이동흡 목영준)으로 의견이 갈렸다. 헌재가 4명의 재판관 퇴임을 앞두고 낙태 관련 선고를 강행한 배경에는 이런 균등한 의견 분포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헌재가 8인 재판관 체제에서 민감한 사건의 결론을 냄으로써 스스로 뒷말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신임 재판관이 합의 과정에 참가할 경우 현재의 팽팽한 의견 대립이 깨지고 위헌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현 재판관 진용으로 선고를 강행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법한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헌재 관계자는 "낙태 반대파가 의도적으로 결정을 빨리 내리도록 조율했다는 지적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말"이라며 "이날 결정은 정상적 절차가 진행돼 무겁게 내려진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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