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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 탐구] <2> 쿠데타·유신 부정 않는 朴…"대통령은 헌정 수호해야 하는데"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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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 탐구] <2> 쿠데타·유신 부정 않는 朴…"대통령은 헌정 수호해야 하는데" 비판

입력
2012.08.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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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5ㆍ16 쿠데타와 유신 독재 문제는 대선 가도에서 가장 괴로운 검증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와 독재 체제에 대한 인식 문제는 지도자의 미래 국정운영 기조 및 방식과도 연결된 것이어서 이 같은 쟁점은 단순히 과거사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야당도 박 후보의 역사인식 문제를 첫 번째 검증 대상으로 꼽고 있다.

이는 곧 박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 중 부정적 유산을 어떻게 뛰어넘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잘 정리하고 극복하지 못한다면 박 후보가 취약한 수도권∙중도층의 표심을 끌어당기기 어려울 수 있다.

박 후보는 7월 16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정치부장 토론회에서 5ㆍ16에 대해 "당시 가난과 안보 위기 상황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옳으니 그르니 하기보다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는 박 후보의 역사인식 논란에 불을 댕겼다. 5년 전인 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청문회에서의 "구국의 혁명" 발언보다 표현 수위가 다소 낮아졌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박 후보의 인식에는 근본적 변화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이 계속되자 박 후보는 또 표현을 완화했다. 이달 8일 새누리당 경선 토론회에서 박 후보는 "아버지 스스로도 '다시는 나같이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듯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근본적 인식 변화는 아니었다. 박 후보는 20일 대선 후보 확정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민생을 제쳐두고 그 문제를 갖고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로 자꾸 가려고 하면 한이 없다"고 말했다.

박 후보의 이 같은 인식과 발언은 대통령이 되려는 대선 후보로서 적절치 않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헌법(66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의무가 '헌정 수호'이고, 헌정수호의 핵심이 쿠데타 방지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은 "대통령에 취임하는 순간부터 퇴임할 때까지 대통령의 첫째 의무는 헌정 수호"라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가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비판적 지적이 나왔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경선 과정에서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문제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며 "부친의 일이어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맞는 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박 후보 측 내부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5∙16을 정리하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중도층이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은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선 캠프의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은 22일 "이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내일을 지향하고 나라를 끌어가겠다는 입장에 섰으니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전향적으로 얘기해야 한다"며 "박 후보가 그렇게 바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신 문제도 그렇다. 박 후보는 유신에 대해서도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유신에서 일어났던 국가 발전 전략과 관련해선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도 비슷한 견해를 표명했다. 유신의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지 않는 모호한 입장이다.

박 후보는 다만 "그 시대에 피해를 보고 고통을 받은 분들과 가족 분들께는 여러 차례 말씀 드렸듯이 항상 죄송스런 마음이 있고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실제 박 후보는 2004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를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2007년 7월엔 유신 시절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의 부인을 만나 "진심으로 위로 드린다"며 손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야당의 격렬한 검증 공세를 피하긴 어렵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장기 독재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박 후보는 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피격 당한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민주통합당은 이런 점 등을 들어 박 후보를 '유신 독재의 2인자'라고 규정하며 "반성과 사죄가 우선"이라고 맹공을 펴고 있다.

야당의 공세에 대해 박 후보 측은 "박 전 대통령의 부정적 측면만 부각해 이를 박 후보에게 책임지라고 공격하는 것은 연좌제"라며 "박 전 대통령의 근대화 업적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박 후보 캠프 내부에서는 유신에 대한 전향적 입장 표명과 피해자에 대한 추가 사과 등을 통해 과거의 부정적 유산을 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 정수장학회, 부산일보 사태로 장물논란 재점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수장학회 문제이다. 박 후보에 대한 정수장학회 관련 의혹은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된다. 한 갈래는 박 후보 자신은 강제 헌납 논란의 대상이 된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측근이 여전히 이사장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편집권 문제로 발행 중단 사태까지 갔던 부산일보의 노사 갈등도 논란의 소재가 되고 있다. 부산일보는 정수장학회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언론사이다. 야권은 두 사안에 대해 "박 후보가 모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정수장학회 뿌리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정수장학회의 전신은 부산 지역 기업인 고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장학회를 헌납하도록 했고, 부일장학회는 그 뒤 '5ㆍ16 장학회'에 이어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딴 '정수(正修)장학회'(1982년)로 이름이 바뀐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장물을 남에게 맡겨놓으면 장물이 아닌가"라며 '장물 논란'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95년 이사장에 취임한 박 후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 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가 "강제에 의한 헌납"이라고 결론 짓고 논란이 확산되자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다. 이에 따라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가 바통을 이어 받아 지금까지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70년대 말 청와대에서 의전비서관을 지낸 최 이사장은 박 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박 후보가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미래연합을 만들었을 때에는 운영위원을 맡았다. 때문에 야권에선 정수장학회가 사실상 박 후보의 영향권에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최 이사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말 불거진 부산일보 사태로 재점화된다. 지난해 11월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을 촉구하는 노조의 기사가 실리자 사측이 편집국장을 대기 발령시키고, 노조위원장을 해고한 게 발단이었다. 노사 갈등은 신문 발행 중단 사태로까지 번졌다.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관련 의혹 제기에 대해 "제가 이사장도 아닌데 제게 해결하라고 하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문제가 있었다면 노무현 정부에서 해결됐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 재야 정치인이었던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문제도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장 선생이 사망한 1975년 당시 검찰은 '등산 중 실족에 의한 추락사'라고 발표했으나 야권에선 '정치적 타살'이라고 주장해 왔다.

장 선생 유족과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최근 "사망 37년 만에 유골을 처음으로 검시해 머리 뒤쪽에 6cm 정도의 구멍과 머리뼈 금이 발견됐다"며 타살을 재차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흉기로 두개골을 내리칠 경우 봉합선을 따라 깨질 뿐 원형 모양으로 깨지지 못한다"는 반론도 있다.

장 선생의 의문사에 대해선 과거 두 차례 조사된 바 있다. 1993년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 조사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오른쪽 후두부 함몰 골절이 결정적 사인'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진상규명 불능'이란 판정을 내리면서도, 장 선생 주검에 추락 흔적이 거의 없는 점 등을 들어 "과거 수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두 번의 조사 모두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타살로 결론짓지는 못했다.

박 후보는 20일 대선 후보 선출 뒤 기자회견에서 재조사 요구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시절에도 진상조사위에서 조사했고, 그 전 정권에서도 했다"며 "그렇게 나왔는데도 조사할 게 있다면 해야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정치권이 미래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상당 기간 장 선생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될 것이고, 야권은 이 과정에서 유신 시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 후보를 겨냥해 공세를 퍼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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