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26일 개막하는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말라는 국제사회 압박에 직면했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만류하고, 이스라엘은 격하게 반대한다. 유엔은 조만간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해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사실 비동맹운동 회원국은 대부분이 유엔 회원국이어서 유엔 사무총장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번 회의는 120개 회원국 중 40개국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반 총장의 참석 여부가 민감해진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란 제재 및 고립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외교 수단과 경제 제재를 통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에서 이란 공습론이 비등하고, 9월 군사공격설까지 나도는 등 오바마 행정부와 불편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민감한 때 열리는 테헤란 회의는 이란이 고립되기보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반 총장의 회의 참석은 그 연장선에서 이란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다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본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회의가 수많은 국제 의무를 위반하고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는 나라에서 열린다"며 장소를 문제 삼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이스라엘의 진보언론 하레츠는 반 총장의 참석이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정책 무용론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외교 우선론이 흔들리면 오바마의 재선가도에 악재가 될 이스라엘의 무력 공습 주장에 다시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반 총장의 회의 참석이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이란의 오판을 자극할 것이란 우려를 갖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반 총장과 전화통화에서 회의 불참을 요구한 뒤 결례를 무릅쓰고 이를 언론에 공개, 반 총장을 압박한 것은 현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반 총장이 이런 부담을 안고 회의 참석을 강행한다면 이란 정부로부터 핵개발과 관련된 성과를 얻어 내야 역풍을 피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반 총장의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아 보인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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