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상한 바람이 분다. 더위에 부푼 공기 아직 무지근하고, 며칠을 내리 뿌린 비로 망막에 맺힌 세상 온통 추적하지만, 땀으로 끈끈한 살갗의 감촉과 관계없이 내 몸의 감각중추는 이제 상쾌한 바람을 느낀다. 팔월 말. 초가을 바람은 그렇게 늘, 산맥 너머가 아니라 가슴 깊숙한 곳에서 먼저 불어오는 법이다. 마른 펌프에 마중물 붓듯, 계절 갈이에 더딘 하늘에 불어넣는 가을 마중바람이다. 그런 청량한 빛깔의 바람이 찰랑이는 곳을 찾아 차를 몰았다. 강원 정선군 신동읍 새비재. 고원에는 알밴 배추밭이 푸른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그 곡선이 끝나는 곳엔 이미 가을의 하늘빛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고갯길 걸려 있는 일대의 산세가 날아가는 새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 이름이 새비재다. 승용차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재의 높이는 850m다. 하지만 고갯길에 서면 질운산(1,172m)과 두위봉(1,466m)이 발 아래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급할 것 없이 넉넉하게 펼쳐진 고원과 멀리서 첩첩이 주름져 흐르는 강원도의 산맥이 부리는 원근감의 왜곡이다. 독하게 더운 날에도 온도계 붉은 줄이 30도 눈금을 좀체 넘지 않는 고랭지. 구름 사이로 언뜻 진청의 하늘이 보였던 지난 주말, 새비재 고원은 이미 여름을 떠나 보낸 뒤였다. 수확 끝낸 민둥밭과 푸른 배추밭, 희끗한 옥수수밭이 콜라주처럼 어울린 모습이 유럽의 구릉지 풍경 같았다. 벌개미취 흔들고 불어가는 바람이 보드라웠다.
새비재라는 이름은 낯설 수 있지만 새비재의 능선은 다들 한번쯤 봤음직한 곡선이다. 요즘 스크린 속에서 자일을 타고 고층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는(영화 '도둑들') 전지현, 그녀가 10여 년 전 차태현과 함께 타임캡슐을 묻었던('엽기적인 그녀') 곳이 바로 새비재다. 간혹 등산객들이 찾아와 "이게 그 엽기 소나무"라고 기억해내던 이곳을, 정선군이 몇 해 전 적잖은 돈을 들여 '타임캡슐 공원'으로 만들었다. 타조알처럼 생긴 캡슐에 추억의 물건을 담아 원하는 기간(100일~3년) 뒤에 열어볼 수 있다. 그런데 판매가 통 시원치 않단다. 깎고 다듬어 공원을 만드느라 재의 모습은 적잖이 변형돼 버렸다.
외지인의 눈엔 마냥 예뻐 보이지만 새비재는 대표적인 고랭지 밭 가운데 하나다. 유월에 뿌린 모종이 씨알 굵은 결구배추로 자라 수확을 앞두고 있다. 약통을 맨 사람들의 손이 분주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걸로 봐서 해로운 농약 같지는 않았다. 한 농부에게 뭐냐고 물었더니 어색하게 웃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가가 보니 밀짚모자 아래 눈동자의 색깔과 입술의 두께가 나와 다소 달랐다. 여름이 조금 더 뜨거운 나라에서 온 일꾼인 듯했다. 팔월 말 새비재의 바람이 그에게도 가을을 부르는 풍경일까. 여행길에서 원경과 근경은 자주 어긋버긋한데, 그 이격을 해소하는 법을 나는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
"이 재가 본래 산업도로래요. 전엔 탄 실은 증기차가 이리 넘어 다녔는데…"
새비재에도 사람 사는 집이 있다. 문패에 박힌 동네 이름은 정선군 신동읍 조비치. 조비치(鳥飛峙)는 새비재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정연수(79) 할아버지 댁에서 커피를 얻어 마셨다. "한창 때는 한 150호 됐지요. 이제 20호나 되려나… 다 죽고 이젠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 탄광 경기가 좋던 시절 고개 아래 함백이 시(市)로 승격되니 마니 할 때, 새비재는 함백에 방 한 칸 마련할 여유가 없는 이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 공무과에 근무하던 정 할아버지도 손수 새비재 산비탈에 집을 지었다. 할아버지의 아홉 아들딸은 탄차를 얻어 타고 아랫마을로 통학했단다. 오래 전 자식들이 떠나간 집은 휑했다. 마당 한 편에 새로 쓴 묘를 손질하는 것이 기력 없어 농사도 못 짓는다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소일거리인 듯했다.
"이거? 내 묘라요. 가묘. 죽으면 할망구랑 묻힐라고 만들어놨지요. 평생 여기서 살았는데 어데 딴 데 가겠어요?"
새비재 고갯길은 질운산 남쪽 자락 돌아 백운산(1,426m) 비탈의 화절령으로 이어진다. '화절령(花折嶺)'을 한글로 풀면 '꽃꺾이재'. 봄이면 나물 뜯으러 나온 여인들이 온 산에 지천인 진달래를 꺾느라 해지는 줄 몰랐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해발 1,000m 이상 되는 고지대에 비포장길이 20㎞ 넘게 계속된다. 꽃으로 가득한 오솔길은 수십 년 동안 탄차의 시커먼 연기가 꼬리를 무는 길이었다가, 지금은 트레킹이나 산악자전거, 오프로드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이 찾는 길이 됐다. 겹겹의 백두대간 산맥이 파도를 이룬 모습을 시야 가득 담을 수 있다. 거기로 들어갈까 하다가 함백으로 내려가는 비탈길로 차를 몰았다. 가을의 기별을 찾아 떠난 여행, 왠지 꽃보다 탄(炭)의 흔적이 발길을 끌었다.
탄가루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함백은 아직 탄광촌의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그 시절 열을 맞춰 지은 똑 같은 집들이 여전히 처마를 맞대고 있고, 1970년대 사회 교과서에 실릴 만큼 흥성했던 함백의 모습이 벽화로 기록돼 있다. 이 마을이 거듭 자랑해도 과하지 않은 것은 기차 역사다. 철도시설공단은 폐광 후 손님이 끊긴 함백역사를 2006년 예고 없이 허물어버렸는데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700여일 만에 복원했다. 이런 까닭에 함백은 국가기록원에 의해 2008년 '제1호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됐다. 그러나 탄의 흔적은 이제 이야기 속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여름이 저무는 마을엔 그저 가을 야생화의 보랏빛이 그득했다. 복원된 함백역 벤치에 앉아 그 빛을 눈에 담았다. 새비재를 타고 내린 서늘한 바람이 녹슨 철로를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 여행수첩
●강원도 땅이지만 충청도에 있는 중앙고속도로 제천IC가 가깝다. 톨게이트 나와 38번 국도 타고 영월 지나서 신동 삼거리에서 421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새비재에 닿을 수 있다. ●타임캡슐 공원(033-375-0121)엔 5,800여개의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 캡슐을 구입하거나 대여해 기념이 되는 물건을 묻어둔 뒤 나중에 꺼내볼 수 있다. 1년 대여요금 2만원. ●함백역 가까운 곳에 정선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033-378-7856)이 있다. 근현대사 자료 1만여점이 소장돼 있다.
정선=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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