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 독도 세리머니 공문에 "행정적 면에서 좀 더 신중했어야 일본에 해명서 보낼 필요 없었다"주축 선수들 해외리그 진출엔 "무조건 빅 클럽이라거나 금전적 조건으로 움직이면 안돼 그라운드에 설 시간 충분해야 한국 축구에 큰 기여할 수 있어"앞으로의 계획은 "3년6개월 앞만 보고 달려 에너지와 지식 모두 소진됐다 자연인으로 돌아가 다시 채울 것 월드컵 감독 거론 예의 아니다"
홍명보(43) 런던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늘 그렇듯이 결산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당당했다. 거침이 없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홍 감독은 22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결산 기자회견에서 1시간여에 걸쳐 한국 축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털어놨다.
2009년 2월 청소년 대표팀(20세 이하) 사령탑에 오르면서 시작된 3년 6개월여의 긴 여정이다. 그는 "단 한 점의 후회를 남기지 않은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애제자인 박종우(23ㆍ부산)의 동메달을 유보하고 있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아쉬움도 거리낌 없이 밝혔다.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쏟아 부은 에너지를 재충전한 후 축구판에 돌아오겠다는 뜻을 밝혔다.
외면 당한 박종우에 손을 뻗었다
런던올림픽 축구 3ㆍ4위 결정전에서 승리한 후 미드필더 박종우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푯말을 관중석으로부터 건네 받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를 문제 삼아 박종우에 대한 동메달 수여를 보류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축구협회는 이와 관련해 IOC와 일본축구협회에 굴욕적인 대응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홍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박종우는 팀을 위해 가장 많은 공헌을 했던 선수다. 그가 시상대에 오르지 못하고 이후 공식 행사에도 참석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실망스러웠다. 이 때문에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축구협회의 환영 만찬에 참가하라고 지시했다. 감독으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체육회와 축구협회가 박종우를 외면했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민 이가 홍 감독이었던 셈이다.
국민적인 지탄을 받은 축구협회의 사과 공문에 대해서도 그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홍 감독은 "행정적인 면에서 좀더 신중했어야 한다. 일본축구협회와는 올림픽 대표팀 선수 차출에 대해 도움을 받을 정도로 우호적인 관계다. 그러나 해명서를 보낼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뜻이 같다"고 말했다.
올림픽에 모든 것 바쳤다, 무조건 쉰다
홍 감독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런던올림픽에 쏟아 부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축구와 관련한 일을 할 자신도,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3년 6개월간 목표를 위해 달려왔다. 지금은 내 에너지와 경험, 지식이 모두 소진됐고 이를 다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분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강조했다. 항간에 나돌고 있는 K리그 '감독 취임설'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공식적인 제안을 받은 적도 없고 제안을 받더라도 고사할 것이다. '자연인 홍명보'로 돌아가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임무에도 충실하고 싶다"고 했다.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사령탑 부임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최강희 감독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현재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내가 지도한 선수들이 월드컵에 나간다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브라질 가고 싶다면 정신 차려라
홍 감독 스스로는 브라질 월드컵행에 대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제자들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2년 후 절대로 좋은 결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올림픽 동메달이 2년 후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나와 같이 있던 시간에서 배웠던 것들을 선수들이 얼마나 지켜갈 지에 걸려 있다. 지금보다 몇 배,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월드컵에 출전하는 영광은 없을 것이다"라며 제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홍명보호' 주축들의 해외 리그 진출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냉정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도전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무조건 '빅 클럽'이나 금전적인 조건을 보고 움직이면 안 된다. 그라운드에 설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면 한국 축구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해외 진출의 걸림돌인 병역 문제도 해결했다. 한국 축구의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라고 해도 좋다"고 제자들을 격려했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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