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져가자는 일본의 제안에 우리 정부는 응할 의사가 없다. 분쟁 대상이 아니므로 재판에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이런 입장은 일본이 독도 문제의 ICJ 행을 처음 제안한 1950년대부터 내내 일관된 것이다. ICJ의 재판은 분쟁 당사국 쌍방이 모두 동의해야 이뤄지기 때문에, 한국이 거부하는 한 재판이 열릴 가능성은 없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독도 영유권에 관한 한“분쟁은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우리 땅임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에 재판을 해서 다툴 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주장일 뿐 국제법적 판단은 다르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국제법에서 분쟁은 ‘법적인 문제나 사실 관계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를 가리킨다. 분쟁이 있다, 없다는 판단은 분쟁 당사국이 아니라 국제 재판이 내리는 것이고, 어느 한쪽의 주장이나 청구에 대해 상대국이 강하게 부정하면 분쟁이 있다고 입증된 것으로 본다. 국제법 전문가인 김찬규 고려대 명예교수는 “분쟁에 관한 이러한 국제법적 정의는 ICJ의 전신인 국제상설사법재판소(PCIJ)의 1934년 판례로 확립되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며 “이 기준에 따르면 독도는 일본이 원하는 대로 이미 분쟁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이 한국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제소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재판이 벌어질 수는 없지만, 한국에 국제적 압력을 가하는 효과는 있다. “당당하다면 왜 재판에 응하지 않느냐”는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상대국을 재판에 끌어낸 실제 사례가 ICJ 판례에 2건이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이 응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일본이 공동 제소를 제안한 것은 독도 분쟁이 ‘있다’고 입증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본은 다음 수순으로 일방적인 제소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도 분쟁은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했으나, 한국이 거부해서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국제 여론을 만들어가는 것이 일본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유엔 총회나 유엔 안보리에 독도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다. 예컨대 안보리가 이 문제를 검토해 ICJ행을 권고하는 결의를 할 경우, 한국이 이를 거부하면 그에 따른 정치적 외교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ICJ가 아닌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에서 독도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을 말한다. ICJ와 달리 ITLOS는 일방적 제소만으로도 재판이 열린다. ITLOS는 유엔국제해양법의 적용과 해석에 관한 판단을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독도 영유권을 판단할 권한은 없다. 하지만 일본이 영유권이 아닌 다른 문제로 ‘혼합 분쟁’을 제소해 독도 영유권 문제를 간접적으로 제기할 수는 있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 한국 정부는 2006년 유엔해양법에 따른 강제관할권 배제 선언을 했다. 유엔해양법 제 287조에 의거한 이 선언에 따라 해양 경계 획정, 군사활동, 해양 과학조사 및 어업에 관한 분쟁에서 한국은 일본 등 다른 나라가 ICJ, ITLOS 등 국제 사법기구에 일방적으로 제소해도 그 분쟁 처리 절차를 따를 의무가 없다.
김 교수는 “강제관할권 배제 선언은 일본의 일방적 제소를 막는 장치이지만, 혼합분쟁에는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100% 완벽한 안전판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굳히는 것이 일본의 전략인 만큼, 거기에 말려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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