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서 우리 집은 꽤나 유명했다. 보통 집집에 아이들이 둘 정도였던 데 반해 우리 집은 그 곱절인데다 죄다 딸이었으니 말이다. 연년생에 쌍둥이에 큰애와 막내 사이의 터울이 고작해야 네 살이었으니 네 자매가 한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들의 담임선생님은 곧잘 겹치기도 했던 바, 교무실 청소 담당이던 내게 건네신 교감선생님 말씀에 귓불이 붉어졌던 기억이 있다.
네가 그 집 딸이구나, 2학년 둘, 5학년에 하나, 6학년에 하나, 캬 아버님 말띠시냐? 정력 하난 끝내주시나보네. 어렸으니 정확한 뜻은 아니더라도 그 뉘앙스로 뭔가의 부끄러움을 느꼈던 나는 이렇게 시정을 요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빠 말띠 아니거든요, 해방둥이 닭띠거든요, 라고.
내가 유독 기억력이 좋은 건가, 아니면 어른들의 말이 유난히 거슬렸던 건가, 어렸을 적 추억담을 늘어놓는 자리에서 난 늘 내가 들은 어른들의 못할 소리나 토해내니. 집에 갈 적마다 주먹 하나씩은 웃자라 있는 조카를 보면 이름 부르는 거 말고 무슨 말을 더 해줘야 하나 실없이 웃으며 머리를 굴릴 때가 있다.
그게 참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이다. 아이들의 뇌가 물 먹는 창호지보다 더 흡입력이 빠르다는 건 누구나가 다 아는 일, 22개월 된 조카가 지나가다 어, 어, 하기에 봤더니 제가 엊그제 갔던 고깃집이라나. 음담패설의 왕자 우리 아빠 이제 와 내 시집 놓고 반성하신다. 하고많은 직업 가운데 내가 시인이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김민정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