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관리하고 있다."
안호영 외교통상부 1차관은 지난 17일 오전 새누리당이 개최한 외교·국방 현안 당정 간담회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일본과 마찰이 빚어졌지만 우려할 것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일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유감의 뜻을 담은 서한을 보내자 청와대와 정부는 반박 서한을 보내야 하는지를 놓고 나흘째 허둥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20일 "국제법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고작 서한 한 통 보낸 일본의 조치를 미처 예상하지 못해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독도는 영토 문제가 아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뒤늦게 냉정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일본이 조치를 취하면 거기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면 된다'며 "내버려두면 저쪽(일본)이 먼저 잦아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나서서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독도와 관련해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독도 영유권 공고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술이 보이지 않는다. 일왕(日王)의 사과를 요구하고 독도에 표지석을 세우며 일본을 몰아붙이고서 이제는 독도 문제가 국제사회에 부각될까 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수위 조절에 나선 것도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 일본의 파상 공세에 당황해 주춤하는 측면이 크다.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문제가 불거졌을 때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일본은 ICJ는 물론 유엔 총회와 안보리, 해양법재판소(ITLOS) 등 다양한 외교 경로를 통해 독도 문제를 이슈화할 조짐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구체적 대응 시나리오 없이 개념적 수준의 대책만 마련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고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등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웃나라 일본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13일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며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국익을 고려한 고도의 전략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국민 정서에 기대는 대응을 한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다. 정치권에서 정부에 신중한 대응을 주문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는 과거 일본의 독도 망언에 대해 논평이나 성명 등 외교적 조치로 대처해 왔다.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대신 일본의 재량을 줄여 독도 문제가 정치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반면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정책적 일관성에서 벗어난 듯한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일본의 선택권을 넓혀주고 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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