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열한 살 기독교도 소녀가 이슬람 경전 코란을 훼손한 혐의로 체포됐다. 소녀의 죄목은 신성모독법 위반으로, 유죄 확정 땐 사형을 받을 수도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16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외곽마을 메흐라바드에서 리프타 마시흐(11)라는 소녀가 코란을 소각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구금됐다. 몇몇 주민들이 마시흐가 집안에서 코란을 태우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고, 무슬림 수백명이 처벌을 요구하며 고속도로를 점령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인 뒤다. 당초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려던 경찰은 무슬림 주민들의 압력에 결국 소녀를 체포했다. 일부 지역 언론들은 마시흐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무슬림 주민들은 이를 부인했다.
가디언은 그러나 마시흐의 범행을 목격했다는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했다. 마시흐가 자기 집에서 꾸러미를 들고 나오는 것을 봤다는 무슬림 하마드 말리크(23)는 "꾸러미 속에 아랍어가 적힌 것을 봤지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녀가 뭔가를 내다버리던 중 체포됐으며 소각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마시흐가 태운 것이 무엇인지를 놓고도 증언이 엇갈린다. 가디언은 "소녀가 코란을 태웠다는 사람도 있고, 코란 문구를 옮긴 소책자를 태웠다는 사람도 있다"며 "그녀가 갖다 버렸다는 재의 양을 두고도 말이 엇갈린다"고 전했다.
마시흐가 체포된 뒤 메흐라바드의 무슬림들은 이곳에 사는 기독교인 900여명에게 9월1일까지 마을을 떠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도 다수는 테러를 피해 인근 기독교도 밀집 지역으로 피신했다. 무슬림 상점 주인들은 남은 기독교인들에게 물을 비롯한 생필품 판매를 거부하고 있다. 메흐라바드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기독교인들은 무슬림 집에 세들어 살면서 하수구 관리 같은 험한 일로 생계를 꾸려왔다.
가디언은 이전부터 무슬림들이 이 지역 교회 3곳에서 예배 때 나는 소음을 문제 삼아 예배 중단을 요구해왔다고 보도했다. 다른 종교에 불만을 가져왔던 주민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실력행사에 나선 셈이다.
국제사회가 악법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신성모독법은 파키스탄에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2010년 손을 씻지 않고 코란을 만진 기독교도 부부가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에는 이 법을 비판하던 살먼 태셔 전 펀자브 주지사, 샤바즈 바티 연방 소수민족 담당 장관이 각각 피살됐다. 무슬림 군중이 신성모독 피의자를 직접 처형하는 일도 종종 있다.
사건이 확대되자 폴 바티 국민화합부 장관은 "소녀가 고의적으로 코란을 훼손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진화에 나섰다. 파키스탄 소수자연합도 "이번 사건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내무장관에게 즉각 사건 조사를 지시했다고 대통령 대변인이 전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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