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8월 21일 오후 필리핀 마닐라 국제공항. 경계 병력들로 삼엄한 공항 활주로에 중화항공 여객기가 내려섰다. 잠시 후 몇 명의 군인들이 멈춰 선 비행기에 올랐고 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흰 옷을 입은 한 사내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섰다. 일행이 준비된 차량으로 이동하는 순간, 항공기 정비사 복장을 한 20대 청년이 이들 곁으로 다가서며 권총을 꺼내 들었고 연이어 4~5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사내는 흰 옷을 붉게 물들이며 힘없이 쓰러졌고 저격범 또한 경계를 서던 무장 경찰과 군인들의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활주로 저편에서 한 여인이 울부짖었다. "니노이! 군인들이 니노이를 쐈어!"
3년간의 미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던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이 50년에 걸친 굴곡 많던 정치인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아키노의 비극은 73년 그가 대통령후보 물망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1932년 필리핀루손 섬에서 출생한 아키노는 18세에 종군기자로 한국전에 참전했으며 20대에 시장과 도지사를 거친 후 34세에 상원의원이 되는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정치명문가의 자제였다.
야당 지도자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마르코스 독재 정권에 항거한다는 이유로 72년 내란 혐의로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언도 받았고 8년 여의 감옥 생활 끝에 심장병 치료를 위해 미국 망명길에 오른 후 3년 만에 귀국을 감행하다 결국 정치적 희생자가 된 것이다.
마르코스 정부는 청부 살인업자인 '롤란드 갈만'의 단독 범행이라고 밝혔으나, 야당 측은 아키노를 호송하던 보안군이 살해했다고 주장하면서 필리핀 전역은 긴장 국면을 맞았다. 아키노의 장례식에는 수 백만의 군중이 몰려 독재자 마르코스를 규탄했고 이 사건은 평범한 삶을 살던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를 정치인이자 투사로 만들었다.
필리핀에는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3년 뒤 '피플 파워'라 불리는 민주 혁명으로 인해 마르코스와 부인 이멜다가 조국에서 쫓겨났고 남편의 뜻을 이어 코라손 아키노가 필리핀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취임했다.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 속에 집권 6년 동안 필리핀 사회의 개혁을 외치던 그녀는 군부 쿠데타에 시달리면서도 단임제 약속을 지켜내는 등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9년 8월 결장암 투병 끝에 76세로 사망하자 세계의 수 많은 지도자들이 이를 애도했다.
지금 필리핀은 베니그노 아키노 전 상원의원과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과의 사이에 태어난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이 이끌고 있다.
아직 미혼으로 세계 최초의 모자(母子) 대통령 기록을 세운 그는 한국계 방송 인 그레이스 리(30ㆍ한국명 이경희)와의 교제로 우리에게 더욱 유명해졌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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