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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코끼리 발톱과 공항 정치

입력
2012.08.1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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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예산과 관련해서 '코끼리 발톱'이라는 비유가 있다. 처음에는 '발톱'만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코끼리'가 되어있더라는 것이다. 국토해양부가 최근 국내 공항개발 수요조사 명목으로 10억원의 예산을 슬그머니 책정한 것도 '코끼리 발톱'을 내민 것이다. 특정 사업의 수요조사 명목으로 예산을 책정하는 것은 일단 '발을 담그는' 행위로 액수가 적어 통상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일단 이렇게 발을 담가 놓아야 그 다음 예산 프로세스가 진행되기 때문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동남권신공항은 이미 정부 스스로 백지화한 것이고 대통령과 총리까지 나서서 사과까지 했던 사안이다. 신공항관련 예산책정 사실이 알려진 뒤 김황식 총리가 한만희 국토해양부 1차관을 불러 질책했다는 얘기가 나온 것으로 봐서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정부 내에서조차 조율이 안된 상황에서 예산을 들이민 국토해양부의 속셈을 이해할 수 없다. 한 차관은 "5년마다 수립하는 전국 공항개발 중장기 계획을 앞두고, 국내 공항의 수요를 알아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지만 의도가 수상쩍다.

혹시나 국토해양부가 유력 차기 정권에 '충성'하기 위해 논란을 다시 일으킨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정부의 동남권신공항 백지화 결정에 대해 당시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고 비판했고,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게다가 새누리당이건 민주당이건 대선 주자들은 소신에 관계없이 모두 동남권신공항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남권 득표 때문이다. 재추진을 공약으로 내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토해양부 입장에서도 재추진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가덕도건 밀양이건 신공항건설이 결정되면 국토해양부는 대규모 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 적어도 10조원에 달할 신공항 예산을 확보하면 막강한 힘을 갖는다. 예산이 있으면 업자가 들끓고 떡고물도 생기기 마련이다. 원래 '정부 예산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라고 했다. 무조건 자기 부처나 부서로 끌어다 놓고 볼 일이다. 조직으로 봐서도 이점이 많다. 우선 국토해양부 내부에 '동남권신공항사업단'이 마련된다. 통상 국장급자리다. 게다가 공사를 맡을 동남권신공항공사가 설립되어야 하고 사장 이하 많은 자리가 만들어진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예산은 만지면 만질수록 점점 커져서 '코끼리'가 되는 법이다. 동남권신공항의 예산규모는 지금 추산으로 10조원가까이 된다지만 인플레 반영, 설계변경 등을 통해 최종 투입되는 예산은 당초 예상보다 1.5배나 2배는 족히 될 것이다. 인천공항도 그랬고 경부고속철도도 그랬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관행처럼 늘 그래왔던 것이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동남권신공항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의문이다.

김해공항의 여객수송 실적을 보면 여전히 청사 수용능력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가파르게 수요가 늘어도 10년 이상 거뜬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또 2000년 전후로 들어선 지방 국제공항들은 손님이 없어 파리를 날리며 운영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신세다. '서남권신공항'이라는 명목으로 3,000억원 이상 투입한 무안국제공항은 연간 여객수용능력이 500만명이 넘지만 이용객수는 10만명도 안 된다. 양양국제공항은 정기노선도 없이 달랑 전세기만 몇 차례 오간다. 청주국제공항은 말할 것도 없다. 경북 울진공항은 1,300억원을 들여 공사의 80%이상을 해놓고도 2004년 감사원의 사업재조정 요구로 공사가 중단돼 2010년 이후 비행훈련센터로 용도가 변경됐다.

모두 유력 정치인의 개입으로 수요를 부풀려 잡아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한 탓이다. 무안공항은 '한화갑 공항', 울진공항은 '김중권 공항'으로 불리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공무원 조직과 정치인의 교활한 어우러짐의 산물이 지방공항이다. 이제는 '공항 정치'를 막아 예산낭비를 줄여야 한다. 모두가 "신공항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대선후보를 기다려 본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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