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어렵사리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 못지 않게 휴가를 아직 떠나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연중 무휴로 휴가 기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방학에 묶여있는 부모들의 휴가 선택은 아무래도 그 기간이 한정될 수 밖에 없고, 이런저런 이유로 빠듯한 휴가 준비는 결국 가장의 몫이다. 제일 큰 부담은 대부분 휴가비일 터이고 그 짐은 남편과 아버지의 것이겠지만 휴가지의 선택이나 일정은 갈수록 많은 가정에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달렸다. 주 5일제 근무의 정착으로 주말 여가 계획도 보통 일이 아닌데 연중 행사처럼 돌아오는 휴가 계획도 가장들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다.
휴가 여행이 갈수록 잦고 다양해지면서 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도 힘겨운 일이다. 개학하면 친구들과 여름 휴가 얘기를 나누어야 할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가족 휴가보다 색다른 이야기 소재가 더 중요해졌다. 어디를 다녀온 것 못지않게 무엇을 경험하고 왔는지도 중요해진 것이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잤는지보다 왜 그곳을 찾아 무슨 경험을 온 가족이 나누었는지에 관심이 커진 탓이다. 그럴수록 가장의 머리는 더욱 복잡해진다. 가장에게는 휴가 계획을 세우는 일 자체가 회사의 어떤 업무보다 힘든 일일지 모른다. 물론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고, 일이 아니라 쉼이기는 하지만 자칫 물심 양면으로 휴가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 휴가를 계획하고 다녀오는 모든 과정이 쉼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일거리가 되고 더 큰 짐이 되면 그야말로 휴가를 마친 뒤에 오히려 쉼이 필요할지 모른다.
실제 휴가를 다녀온 가정이 차라리 휴가를 떠나지 않은 것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일도 있다. 부부가 이런 저런 일로 언쟁을 벌이다 휴가 도중에 각자가 따로 귀가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휴가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가정이 파경의 위기를 맞기도 한다. 자녀들은 휴가철에 생긴 부모의 갈등으로 휴가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얻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우리 자신이 휴가에 대해 미숙한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는 우리 모두가 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다. 원래 휴가는 학교나 군대, 회사에서 일정한 기간 주어진 일과 과제로부터 단절되는 시간을 뜻한다. 사람들이 일이나 성취에 쉽게 중독되는 본성에 비춰볼 때 누구나 일로부터의 해독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쉼의 출발이다. 쉼은 그래서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자기점검의 시간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엿새간 일하고 마지막 날 하루를 안식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의 쉼을 통해 엿새간 일한 것을 되돌아보면서 기뻐하신다.
진정한 쉼은 그래서 휴가철에 맛보는 것이라기보다 일상의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에 누린다. 쉼을 통해 우리는 일의 의미와 목적을 점검하고 일이 진행되는 방향을 조정한다. 쉼을 통해 우리는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회복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휴가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휴가 중에는 반드시 쉼이 있어야 한다. 휴가는 일이 아니어서 쉼이 있어야 하고, 휴가는 업적이나 결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쉼을 지녀야 한다. 휴가가 휴가다워지는 것은 오직 쉼에 달렸다. 그래서 쉼이 있는 휴가는 휴가지의 문제도 아니고 휴가 기간의 문제도 아니다. 휴가는 가족이 공동체로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쉼이고, 온 가족이 함께 가야 할 미래를 점검하는 쉼이고, 나아가서는 힘겨운 삶이 있다면 그와 같이 짐을 나누어져야 할 쉼이다. 진정한 쉼은 사실 나보다 누군가를 향한 배려로 더욱 깊어진다.
조정민 온누리교회 목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