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서부지법 303호 대법정. 김승연(60) 한화그룹 회장이 재판 시작 30분만에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 법정은 술렁였다. 재판장 서경환 부장판사가 법정구속을 명하는 주문을 읽자 김 회장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법정구속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한화그룹 임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했고, 김 회장의 차남 동원씨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자 장남 동관씨가 진정시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 만큼 '재벌 총수라면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 관행을 깨뜨린, 의외의 판결이었던 셈이다.
실형과 법정구속 판결에 대해 법원 안팎에서는 "무소불위의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재벌 총수에 대한 법원의 엄벌 의지를 천명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서 부장판사는 "2009년 7월부터 적용된 현재의 횡령ㆍ배임범죄 양형기준에는 과거 기업 총수들에게 적용된 (경제 기여 등) 정상 참작 사유에 대한 언급이 없다. 언급되지 않은 이유로 판결할 수는 없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는 엄벌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판결문에 검찰의 압수문건 내용을 인용해 김 회장을 '신의 경지로 절대적인 충성의 대상' '범행의 최대 수혜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판결문은 무려 231쪽에 달했다.
한화 측 변호인은 "김 회장이 법정에 성실하게 출석해 왔고 우리나라의 중심적인 경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과연 도망의 염려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법정구속에 항변했다. 하지만 서 부장판사는 "유죄확신이 들면 법정구속이 일반적인 재판 관행이며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재판부는 2005년 한화그룹의 위장계열사인 한유통과 웰롭이 각각 2,000억원, 1,000억원의 부채로 부도가 임박하자 당시 그룹의 홍동욱 재무팀장이 김 회장의 승인을 받아 그룹 계열사가 부동산 내부거래와 저가 매각 등으로 마련한 거액의 차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한유통과 웰롭의 부채를 해소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했다. 또, 김 회장이 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동일석유 주식을 누나에게 저가 양도하도록 해 계열사에 142억원의 손해를 끼친 것도 업무상 배임으로 인정됐다.
반면 2005년 계열사인 한화S&C 주식을 세 아들에게 저가로 매각한 혐의에 대해서는 한화 측의 주식가격 산정이 합리적이었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권창영 공보판사는 "현 횡령ㆍ배임범죄 양형기준은 엄격한 증명을 요구해 기소 내용 중 절반 정도를 무죄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실형이 선고된 것은 유죄에 대해서는 엄한 처벌이 적용됐다는 의미다.
앞서 횡령ㆍ배임 혐의로 징역 4년6월과 추징금 20억원이 선고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 이어 김 회장도 이날 실형을 선고받자 재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날 판결은 유사한 혐의로 법정에 선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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