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애플간 '세기의 특허소송'을 맡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루시 고(판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워낙 양측 입장이 한치 물러섬 없이 팽팽한데다, 판결이 가져올 파장 자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고 판사는 양 측에 또 한번 화해를 권하고 나섰다.
15일 블룸버그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고 판사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최고경영자들이 배심원단의 평결이 있기 전에 다시 한번 전화로 합의에 나설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가 합의를 권고한 것은 양 사가 특허분쟁을 시작한 이후 벌써 세 번째. 고 판사의 명령에 따라 삼성전자의 최지성 부회장(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애플의 팀 쿡 CEO는 이미 두 차례나 협상테이블에 앉았지만 서로 입장차만 확인한 채 아무런 소득 없이 헤어진 상태다.
하지만 고 판사는 또 한번 협상을 권했다. 그는 "배심원 평결까지 가게 되면 두 회사는 모두 위험요소를 떠안아야 할 것"이란 경고도 곁들였다.
그가 이처럼 타협을 종용하고 나선 것은 지금까지 본안 소송 심리를 진행하면서 양 사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고 판사는 실제 양 측 변호인단에게 "이번 재판을 통해 두 회사가 특허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려고 했다면 충분히 그 메시지가 전달됐을 것"이라며 "지적재산권의 대외가치가 유효하다는 점도 분명해졌다"고 전했다. 즉 삼성전자는 통신기술특허, 애플은 디자인특허 등 각자 자신이 내세우고 있는 특허가치를 전 세계 IT기업들에게 확인시켜줬고, 그런 만큼 더 이상 이 분야에서 특허침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소송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는 것. 이런 상태에서 한 쪽이 '완승'을 위해 소모적 소송전을 계속해간다면 결국 모두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게 고 판사의 생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줄 경우 세계 스마트폰 시장 자체가 재편될 수 있기 때문에 재판부 역시 판결에 강한 부담을 갖고 있으며 더 이상 확전은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사실 양 사는 법정 증거공방을 통해 마케팅 비용과 미국 현지 지역별 제품 판매량 등 내부 문건들이 공개되면서 곤혹스러운 상태에 빠졌다. 고 판사도 양 측 변호사들에게 "배심원 평결까지 갈 경우 입게 될 리스크가 훤히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이 계속된다면 양 사의 영업 비밀들은 계속해서 알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심원 평결 전 양측의 극적 화해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설령 지방법원에서 패하더라도, 현재로선 항소 상고를 통해 소송전을 계속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한편 배심원들을 상대로 한 양 측의 변론 기일은 21일까지이며, 배심원들의 평결을 거쳐 고 판사의 최종 판결은 이르면 이달 말에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배심원들의 결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고 판사에겐 이 결정을 뒤집을 권한이 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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