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차명으로 소유한 위장계열사의 부채 수천억 원을 회사돈으로 갚은 혐의 등으로 징역 4년에 벌금 51억 원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서부지법은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형벌을 요하는 여론을 반영해 2009년 만든 양형기준을 엄격히 적용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개정된 양형기준은 횡령과 배임액수가 5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실형을, 300억원 이상에는 최고 징역 11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월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실형 선고도 새로운 기준에 따른 판결임을 감안할 때 재판부의 설명이 납득이 간다.
그런데도 김 회장 실형선고를 이례적으로 보는 시각에는 재벌 총수들에게 관대한 처벌을 베푼 그 동안의 사법부 판결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10대 재벌 총수들은 1999년 이후 총 2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횡령ㆍ배임, 비자금 조성, 부당 내부거래, 외환관리법 위반 등 범죄의 종류를 불문하고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공식화됐었다. 게다가 형이 확정된 지 평균 9개월 만에 예외 없이 사면을 받았다. 미국의 월드컴 최고경영자(CEO)는 분식회계로 25년 징역형을, 엔론의 CEO는 회계부정으로 24년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지금도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재벌 총수들에 대한 관용은 도덕적 각성을 촉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불법ㆍ편법 경영행위를 부추겨 왔다. 경영권 편법 승계,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장악, 상속세 탈루 등의 행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최근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주장이 사회 전반적으로 힘을 얻는 배경은 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는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9위의 무역대국으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일궈낸 공헌과 성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국제적 위상에 걸 맞는 대기업 내부의 개혁이 절실히 요구된다.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투명성과 함께 윤리경영, 정도(正道)경영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선고는 기업들에게 이 점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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