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은 장래의 전정이나 환로를 열고 나아가려면 상급자들과 두루 사귀어야 하고 젊은 선비들이며 우대의 실력 있는 아전들과도 교분이 두터워야 합니다. 저희 집에 그런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저도 장악원의 악공 기녀들을 몇 사람 초치하여 자리를 마련하곤 했어요. 제 주인께서는 호군을 거쳐 상호군(上護軍) 아홉 사람 중에 들었다가 몇 년 전에 무위영 영장이 되셨습니다. 본댁에는 한 번도 가뵙지 못하다가 그분이 영장되신 후에 인사를 올리러 가서 얌전하신 부인과 아들 하나 딸 둘의 자식들도 보았답니다. 그러고 왠지 마음이 쓸쓸하여 하루 온종일 가야금을 뜯으며 혼자서 소주 한 병을 홀짝홀짝 비웠지요.
지난번 군란 때에 주인께서 소요의 책임을 지고 의금부 전옥서에 갇혔다가 난리 중에 풀려나 하도감 별기군영과 일본 영사관을 쳐부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요. 그이는 대원위 대감이 끌려가고 정국이 바뀐 뒤에 난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민 씨 일족들에게 갖은 추국(推鞫)과 악형을 당하고 한 달 뒤에 군기시(軍器寺) 앞 천변에서 처형당하셨습니다. 며칠 동안 개천가에 버려져 있던 시신을 제가 일꾼을 사서 수습하여 삼청동 본가에 모셨고 부인과 자녀들을 모시고 장의도 치렀습니다. 반란의 수괴로 처형되었으니 옛날 같으면 처자녀와 삼족 모두가 노비로 떨어질 판이었지만 개화된 세상이라고 혈족은 처벌하지 않는 대신 가산 몰수령이 떨어졌지요. 저는 장악원 부근에 있던 집을 부인과 아이들께 내드렸고, 야주개에 방 한 칸을 세내어 혼자 살면서 홍제원 시절부터 알던 추월의 색주가에 나가 연명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이신통은 그믐의 기나긴 신세타령을 들으면서 서일수와 함께 겪었던 군란 당시의 일들이 생각났고, 김만복의 서글서글한 얼굴이 떠올라 새삼 눈물을 글썽였던 것이다. 그들은 쪽잠을 잠깐 자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났고, 신통이 어젯밤의 일을 대충 주막 주인에게 말하니 그는 대번에 안색이 변하였다.
거 참, 불길한 일을 저질렀네 그려. 난리 이후로 애오개와 칠패 일대에 기찰이 날마다 뜨는 판인데 그놈들이 그냥 넘어갈까 모르지. 아무튼 저녁때쯤에나 소리꾼 동무들이 어찌되었는지 수소문을 해보게.
신통은 그믐이와 함께 방 안에 틀어박혀 낮잠도 자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하루를 보냈다. 신통이 고향 이야기를 대충 해주었고 한양에 올라와서 겪은 사연을 말하던 중에 김만복의 이름이 나왔고, 그믐이가 자기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여 서로 놀랐다. 그믐이는 주인의 수하 군병들이 동관묘와 이태원에서 효수당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더니, 이제 김만복 별장의 죽음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되었다면서 그들 사이에 묘한 인연이 얽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신통은 그믐에게 쉬라 이르고는 혼자서 서소문 밖의 칠패 초입으로 슬슬 내려가 보았다. 신통이 가끔 들르던 선술집을 슬쩍 훑어보고는 그냥 지나치려니 주인이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자네 혹시 박 서방 찾는 거 아닌가?
그래 오늘 안 나왔우?
안 나오는 게 다 뭐야? 아까 오후에 홍철릭 입은 별감짜리가 직접 기찰포교들 데리구 왔다 갔다네. 그치들 박삼쇠 이름만 알더라구.
선술집 주인은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는 그의 귓가에 얼굴을 들이대며 속삭였다.
만리재 아랫녘 공청으루 가 보아. 삼쇠가 거기 있을 테니……
그들이 소리 연습하던 장소가 어디인가는 소리패 이외에는 어딘지 모를 것이라 신통은 박삼쇠가 그쯤에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터였다. 과연 천변의 밭두렁 사이에 있는 움막 부근에 다가가니 입구의 거적문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신통이 거적 앞에서 헛기침을 해보이자 두런대던 목소리들이 대뜸 잠잠해진다. 그가 거적을 들치고 얼굴을 들이밀자 안에 있던 세 사내가 제각기 눈은 부릅뜨고 두 주먹은 불끈 쥐고서, 박삼쇠는 파 움에서 쓰던 호미까지 번쩍 치켜들고는 내려칠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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