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잘 나간다는 서울시내 한 의원을 찾았다. 그 의원에서 많이 하고 잘 한다는 시술법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몸의 특정 부위에 생긴 결절을 수술 없이 제거하는 시술법이었다.
결절. 어려운 의학용어다.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솟아나온 부분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혹이다. 정확히 확인해야 했기에 원장에게 결절과 혹이 같은 의미가 맞는지 먼저 물었다. 예상대로 원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가 황당했다. "어떤 환자는 글쎄, 진료실에 들어와선 왼쪽에는 혹, 오른쪽에는 결절이 생겼다고 하면서 어떻게 치료해야 하냐고 묻는 거에요. 내참, 그런 환자 만날 때마다 짜증이 확 나서 정말…."
결절과 혹이 같은 의미인지 모르고 온 환자에게 기초부터 설명하려니 너무 귀찮았다는 소리다. 환자 자격으로 온 게 아닌데도 순간 민망해졌다. 환자라도 결절과 혹이 같은지 다른지 알고 병원에 가야 할 의무는 없다. 원장이 평소 환자를 어떻게 대할지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아이가 아플 때 자주 찾는 동네 소아과가 있다. 주변에 소아과가 없어 그 의원은 항상 북새통이다. 원장에게 우리 아이가 처방 받은 약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계속 먹여도 되는지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열에 아홉은 "내가 처방한 약은 다 괜찮아요, 그냥 먹이란 대로 먹이시기만 하면 돼요" 이런 식이다. 말투도 학생 나무라듯 한다. 뭘 더 물어보고 싶어도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 이름을 부르면 서둘러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난 한 의사는 초면인 여기자 앞에서 성(性)적 농담을 스스럼 없이 늘어놓았다. 심지어 어느 나라에선 한국보다 여성이 싸게 팔린다느니 하는 표현까지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입에 담았다. 평소 여성을 바라보는 그 의사의 시각을 알만 했다. 듣다 못해 "한 자리에 앉아 있기 불편하다"고 정색하고 나니 좀 자제하는 듯했다. 그는 유명 대학병원의 산부인과 과장이다. 많은 여성 환자가 남에게 쉽사리 말 못할 고민을 그 앞에서 털어놓았을 것이다.
가능한 많은 환자를 봐야 적자를 면하고, 같은 설명을 하루에도 수십 명에게 해야 하는 등 의사가 겪는 고충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인데 사뭇 다른 모습의 의사도 분명 있다. 나이 지긋한 환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증상부터 물으면 긴장할까 봐 친근하게 자잘한 일상생활부터 묻고, 자신에게 수술 받은 환자들과 병원 밖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애타게 기다리는 보호자의 심정을 배려해 수술과정을 생중계해주기도 한다. 이들은 환자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데서 출발한다.
최근 사회와 소통하려는 의사 단체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내놓는 보건의료정책에 부당한 부분이 있다면 전문가이자 당사자인 입장에서 물론 지적하고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환자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적잖은 환자들에게 남아 있는 의사의 이미지가 아직 소통보다는 불통이라서가 아닐까.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