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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강제 징용' 유족 황은순씨의 눈물/ "아버지가 학살됐다면…가슴이 먹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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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강제 징용' 유족 황은순씨의 눈물/ "아버지가 학살됐다면…가슴이 먹먹했어요"

입력
2012.08.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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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고생만 했을 아버지가 생각나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했어요."

말로만 전해지던 일본의 사할린 거주 한인 학살 가능성을 담은 러시아 정부 보고서(본보 15일자 1ㆍ7면) 소식이 전해진 15일. 경기도 안산에 사는 황은순(68)씨는 방 한쪽에 있던 손바닥만한 액자를 꺼내 어루만졌다. 액자 속에는 황씨의 아버지 황유한(당시 30세 전후)씨가 1943년 사할린에 징용으로 끌려가기 전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고 찍은 흑백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가 학살됐을 수도 있다는) 증거자료가 나오다니,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다"며 "이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황씨는 선친을 본 적도,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도 없다. 3남2녀 중 맏이였던 선친은 황씨가 태어나기 1년 전에 강제 징용된 후 지금까지 행방불명 상태이기 때문이다. 황씨는 "어느 날 할아버지 앞으로 '마을에 모이라'는 통지서가 나왔는데 연로한 할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가 나갔다가 징용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면 단위로 남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는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차로 실어갔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해방 후 사할린에서 온 편지 한 통 이외에는 남편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재혼했다.

할아버지 손에 자란 황씨는 방직공장에 취업한 17세 때 아버지 소식을 다시 접했다. 함께 징용됐다 일본인과 결혼해 일본에 사는 아버지의 고향 친구와 연락이 닿은 것이다. 아버지의 친구는 황씨에게 "일본에 온 유한이가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말에 사할린으로 갔는데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생사를 파악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황씨는 아버지의 친구에게서 징용 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아버지씨의 사진을 얻어 지금껏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와 관련된 다른 기록은 6ㆍ25 당시 폭격으로 모두 사라졌다.

그는 "작은 아버지가 사진을 끌어안고 울부짖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냐'며 찢어버려 조각을 맞춰서 다시 인화했다"며 "할아버지도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괴로워 술을 많이 드셨다"고 말했다.

결혼 후 3남매를 키운 황씨는 아버지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에서 활동하며 수소문하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이복동생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러시아 라디오방송에 사연을 내보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고 말했다.

황씨는 정부에 할 말이 많았다. 그는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사셨는지, 돌아가셨다면 유골은 찾을 수 있는지, 아버지의 노임은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며 "이번 러시아 보고서를 계기로 우리 정부가 사할린 희생자의 학살 여부에 대해 재조사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고 강조했다.

국가기록원이 러시아 사할린 국립문서보존소에서 입수한 보고서에는 "2차 세계대전 전 사할린 에스토루의 한인 인구 수는 1만229명이었지만 1945년 11월에는 5,322명으로 줄었다"며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한인 주민을 살해한 결과로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윤순 사할린강제동원국내유족회장은 이날 "사할린 강제징용자들이 학살당했다는 유력한 증거가 나왔으니 정부가 나서서 일본에 피해보상을 받도록 행정소송을 내는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안산=글·사진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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