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론은 새누리당이 '부자정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씻는 데 도움이 되는 괜찮은 정책캠페인이다. 대선용만이 아니라, 새로운 보수를 향한 진지한 모색이자 경제 정의에 대한 국민의 여망을 수렴하려는 노력으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너무 지나쳐 탈이다. 무슨 깜짝쇼 하듯 현실성조차 희박한 정책을 덜렁 내놓을 땐 진심인지 장난인지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최근의 '금산(金産)분리' 강화론만 해도 그렇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금하는 원칙이다. 고객예금 같은 채무자산으로 운영되는 은행업의 특성상, 산업자본이 지배할 경우 부정과 비리에 휘말릴 여지를 차단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법으로 기업의 은행지분 소유한도를 4%로 엄격히 제한하다 보니, 외환위기 이후 론스타 같은 해외자본의 국내 금융산업 지배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2009년엔 기업의 은행지분 소유 한도를 9%로 늘리는 금산분리 완화 입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그제 이런 흐름을 180도 돌려 더욱 강경한 금산분리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모임에 제출한 '금산분리 정책방향'에서 가장 논란이 된 대목은 '보험ㆍ증권 등 비은행금융지주사의 일반 자회사 보유 금지'다. 실현될 경우, 보험과 증권 같은 2금융권 계열사를 거느린 삼성과 현대차 등 29개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식인 '재벌금융사 소유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제한' 방안까지 시행되면 대기업집단 경영엔 일대 파란이 일 가능성이 크다.
정책 논의는 학자의 이론적 모색보다 훨씬 더 신중하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재벌의 폐해를 바로잡는 건 꼭 필요하지만, 정치권이 기업 경영환경을 뒤흔들 얘기를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너무 쉽게 공론화하는 건 무책임해 보인다. 가장 나쁜 건 이번 논의가 대선 흥행을 노린 '헛발질'이거나, 업계를 길들이려는 타산에서 나왔을 경우다. 정치의 격을 스스로 훼손하는 그런 작태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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