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하면 감사의견이 거절되거나 자본이 잠식돼 국내 증시에서 퇴출되는 기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실익을 쫓아 스스로 증시를 빠져나가는 '자발적 퇴출' 기업이 늘고 있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티브로드도봉강북방송의 최대주주인 큐릭스홀딩스는 지난달 초부터 자진 상장폐지 목적으로 지분 공개매수에 나섰다. 증시에서 자본조달 실적이 거의 없는 등 상장을 유지해봤자 별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공개매수란 주식의 매수가격과 수량 등을 제시하고 불특정 다수의 주주에게서 주식을 사들이는 것으로, 공개매수 대리인(증권사)을 지정하고 신고서를 거래소와 금융감독원ㆍ금융위원회에 제출해 참여할 수 있다. 큐릭스홀딩스는 7월 한달 간 남은 지분을 사들여 지분율은 98.4%(특별관계인 포함)로 끌어올렸고, 이달 10일 티브로드도봉강북방송의 상장폐지를 최종 결정했다.
코원에너지서비스의 최대주주인 에스케이이엔에스도 8일 잔여지분 17.76%를 모두 매입하겠다고 공고했다. 의사 결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제약이 따르는 상장사 타이틀을 내려놓기로 했다는 것이다. 1978년 도시가스사업을 주목적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작년 말 대한도시가스에서 코원에너지서비스로 명칭을 바꿨다. 1995년 12월 상장된 터라 공개매수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18년 간의 상장사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된다.
거래소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최대주주가 공개매수를 추진한 12개 상장사 가운데 절반이 넘는 7개사가 자진 상장폐지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섰다. 이 가운데 넥스콘테크놀로지와 웨스테이트디벨롭먼트, 티브로드도봉강북방송 등은 공개매수에 성공해 상장폐지를 신청한 상태다. 스스로 증시를 떠나는 기업이 매년 1~2개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올 들어 벌써 4개 기업이 상장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경기 침체로 증시에서의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은데다 주주들 눈치 살피랴 신속한 의사 결정이 힘들다는 게 원인으로 지적된다. 상장 유지 비용도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올 상반기 주식발행 규모는 2000년 이후 최저치인 9,143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86%나 줄었다. 김동하 교보증권 책임연구원은 "상장사는 공개된 기업이기 때문에 경영자의 자율적 판단에 제약이 따르고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줘야 하는 등 신경 쓸 일들이 많다"며 "자금 흐름이 좋다면 굳이 상장을 유지하면서 그 비용을 낼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증시에 새로 진입하는 업체가 줄면서 상장 기업 수도 급감하는 모습이다. 2008년 말 1,742개에 이르던 상장사는 2011년 말 1,734개로 줄은 데 이어 현재 1,718개로 크게 감소했다.
한편, 공매매수에 나서는 기업이 늘면서 업무를 대행해주는 증권사들은 짭짤한 수익을 챙기고 있다. KDB대우증권은 티브로드도봉강북방송과 티브로드한빛방송, 우리투자증권은 넥스콘테크놀로지, 이트레이트증권과 대신증권은 웨스테이트디벨롭먼트의 공개매수 대리인으로 각각 참여했다. 증권사가 챙기는 수수료율은 공개매수금액의 0.3~2% 수준이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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