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경제위기에도 경쟁적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메가뱅크'를 꿈꾸며 공룡집단이 돼가고 있고, 보험업계도 자산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경기둔화에 따른 금리인하로 이들 금융사들이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아 이런 몸집 불리기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의 불황에도 원화 예금 증가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작년 5월 이후 평균 0.45%씩 증가해 6월말 현재 656조5,777억원에 달한다. 경기불황으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높아지면서 고객들이 은행창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자산규모도 급증세다. 은행간 인수ㆍ합병(M&A)이 늘면서 2009년 1,643조원이던 자산규모는 3년 만에 140조원이상 늘어 1,783조원이나 됐다. 자산규모로는 2008년 KB금융그룹을 출범시킨 국민은행이 258조원으로 가장 크며 우리은행(234조원), 신한은행(216조원), 기업은행(180조원), 하나은행(151조원), 산업은행(128조원) 순이다.
몸집 불리기는 다른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보험업계의 경우 올 3월말 총 자산 600조원대를 돌파했다. 지속적인 보험료 유입과 함께 NH농협생명 등이 신규로 시장에 진입하면서 비대해진 것이다. 생명보험의 경우 3월 수신 증가율이 전달대비 12.2%나 되는 등 매달 평균 3.18%씩 수신이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금융권의 덩치 키우기가 경기불황기에는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은 고객 예금을 대출해 얻는 예대마진을 주수익으로 삼고 있고, 보험사는 주로 각종 채권 등에 투자를 하는데 금리가 떨어지는 추세라 수익창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1월 시중은행들의 원화 대출금은 663조5,318억원으로 전달에 비해 0.3%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후 ▦2월 0.1% ▦3월 -0.2% ▦4월 0.3% ▦5월 0.5% ▦6월 0.2%로 답보상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경제위기 상황일수록 고객들이 안전자산을 선호하기 때문에 은행 수신률은 높아지지만 기업들의 성장은 둔화되면서 대출을 많이 하지 않아 여신률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도 부동산, 주식 등 투자자산의 가치가 하락해 자산운용이익률은 4~5%대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기준금리 인하 이후 금리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자산을 운용해서 얻는 이익보다 고객에게 지급할 만기보험금이 더 많아지는 역마진 상황이 늘어나 일부 상품의 경우 판매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보험사들이 지난 10년간 파이 키우기에만 골몰해 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달려온 결과"라며 위기감을 표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펼치는 의도는 소비자들이 금융상품에 저축하거나 투자하라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늘려 경제성장을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불황상황에선 금융권도 몸집 불리기라는 근시안적 경영보다는 여수신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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