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놀고 마른 목도 적시고 이야기도 나눌 겸하여 술상 앞으로 둘러앉아 술을 마실 제, 갑자기 밖에서 요란하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리 오너라.
모두 두리번거리며 서로를 바라보는데 다시 대문을 발로 차는지 빗장이 삐걱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주모 추월이 치맛귀를 싹 돌려 잡고는 마당 지나 문간에 달려가 냉랭하게 외쳤다.
오늘 장사 안 허우.
무슨 소리냐? 너희들 노랫소리가 저 수표교까지 들리더라.
아무튼 오늘 손님 안 받아요.
하고 돌아서려는데 누군가 걸걸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을러댔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친군영의 무예별감이다. 내일도 장사하고 싶거든 어서 문을 열어라!
추월은 돌아서려다가 그 소리에 짐작이 가는지 맥없이 대문 빗장을 열고 만다. 빼꼼히 내다보니 화려한 홍의 걸치고 초립에 호수(虎鬚) 장식 꽂은 대전별감이 분명했고, 그 옆에는 까치 등거리 더그레에 검은 깔때기 쓴 의금부 나장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밤의 색주가에서 그들을 괄시했다가는 그야말로 장사를 폐업해야 될 정도였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별감배와 나장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색주가며 투전판을 돌아다녔는데 성내 왈짜들도 그들과 손잡지 않고는 구역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들도 네댓 명 되었는데 서슴없이 마루로 올라오더니 술판이 벌어진 건넌방 문을 벌컥 열었다. 이쪽에서도 대강 분위기를 눈치채고 무덤덤하게 올려다보는데 얼른 문을 닫지 않고 쓱 훑어보더니 나장짜리가 한마디 했다.
개 대가리에 정자관 쓴다더니…… 요샌 뭐 시정잡배들도 색주가 출입일세.
빗대놓고 욕을 내뱉은 자는 열었던 문을 닫지도 않고 돌아섰다. 추월이 부엌 달린 안방으로 그들을 안내하여 들이니 잠시 마루가 조용해졌다. 술상을 들인다, 건넌방에 앉았던 창기들을 불러들인다, 하며 부산을 떨다가 저들도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지 왁자하는 웃음소리도 들렸다. 박삼쇠 일행은 이미 파흥이 되어 조용히 남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추월이 건너와 방문을 열고는 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믐이 곁에 주저앉아 속삭였다.
이걸 어쩌냐? 별감 어른이 널 찾는구나.
나 그 자리에 못가우.
지난번에야 술이 취해서 그랬던 일이구, 오늘은 제법 점잖게들 왔으니 잠깐 앉았다가 오자꾸나.
싫우, 형님이나 가요. 저는 돌아가신 영장님 의리로 보더라도 저것들과는 동석 못 허우.
추월은 그제야 박삼쇠 일행에게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시늉을 해보이며 황급히 안방으로 건너갔고 뭐야? 하고 고함을 버럭 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루를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미닫이문이 벌컥 열리며 홍철릭 입은 별감짜리가 뛰어들었다. 그는 다짜고짜 그믐이의 머리채를 잡더니 끌고 가려는 것처럼 잡아 당겼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자기 머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그자의 팔을 잡은 채로 맥없이 끌려 나갈 판이었다. 이신통이 갑자기 달려들어 무엇인가로 별감의 뒤통수를 내려쳤고 그는 앞으로 죽 뻗어버렸다. 신통이 엉겁결에 소주를 담아온 거위병을 들어 힘껏 내려친 것이었다. 박삼쇠가 대번에 사태를 알아채고 신통과 그믐이의 등을 떠밀었다.
얼른 도망쳐!
신통이 그믐의 손을 잡고 마당에 내려서는데 안방 문이 열리면서 한 사내가 고개를 내밀었고 박삼쇠와 조대추 등도 마루로 나서는 참이었다. 둘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는데 수표교 쪽으로 향하는 신통의 손목을 그믐이가 휙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뒷골목으로……
신통은 일단 태평방 쪽으로 휘어진 샛길에 들어서니 수표교에서 좌포청 방향으로 뚫린 훤한 대로를 향했다가는 뒤쫓는 자들에게 영락없이 잡혔을 게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을 한참 걸어서 소광교를 건너자 신통이 한걸음 뒤에 따라오던 그믐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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