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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 문제는 제한요인의 조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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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 문제는 제한요인의 조절이다

입력
2012.08.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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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에 가려면 학생의 체력,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경제력, 그리고 아버지의 무관심이 모두 충분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러 조건 중 한 가지만 부족해도 실패라는 소리다. 이와 유사하게 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 중 성장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부족한 요소를 '제한요인'이라고 한다. 최근 한강 본류와 낙동강, 남해 연안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녹조 논란을 보면서 문제의 해결은 제한요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녹조란 강, 호수, 하구 등에서 조류(藻類)나 엽록소를 가진 세균이 급격히 번성하고 죽으면서 산소가 고갈되고, 또 이들이 내놓는 여러 독성 물질로 동물들이 죽고 물의 냄새나 맛이 나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럼 평소 녹조가 생기지 않게 하는 제한요인은 무엇일까? 한편에선 너무 더운 날씨와 장기간 지속된 햇빛 탓이라고 하고 다른 편에서는 4대강 사업 때 만들어진 보(堡) 때문에 물의 흐름이 느려졌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둘 다 완전한 대답은 아니다. 온도나 일사량 때문이라면 날씨가 더 덥고 가뭄도 심했던 해에 일어난 녹조는 설명이 되지 않고, 4대강 사업 때문이라면 사업 구간도 아닌 북한강 상류의 녹조도 설명을 할 수 없다.

수생태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호수의 경우에는 '인', 그리고 일부 하천이나 하구의 경우에는 '질소'라는 물질이 제한요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호수나 하천의 경우 이러한 물질들이 매우 풍부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물질들로 오염돼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정이나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농경지나 도심에서 빗물에 씻겨 나오는 오염된 물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을 전문 용어로 '비점오염'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하천은 조류가 언제든지 번성할 수 있을 정도로 오염되어 있는 상황이며, 여기에 날씨도 덥고 비도 안 오고 일부 구간에서는 보 때문에 물의 흐름까지 느려져서 이렇게 조류가 갑자기 번성하게 된 것이다.

간단히 살펴보면 물속의 조류가 번성하는 것이나 육상에 나무가 자라는 것이나 본질적으로 비슷한 현상이다. 그러나 물속 조류의 번성은 나무 성장에 비해 매우 빠르게 넓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자란 조류는 또 금방 죽어 썩는 과정에서 산소가 소비된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남조류'라고 잘못 불리고 있는 '시아노박테리아'라는 독특한 세균이다. 보통 세균은 다른 생물의 사체를 분해해서 먹고 살지만, 이 시아노박테리아는 엽록소를 가지고 있어서 녹조가 발생할 때 조류처럼 광합성을 하면서 번성한다. 이들 중 일부는 동물에게 해로운 독성물질이나 냄새를 유발하는 화합물을 만들어서 인간의 건강과 수자원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유구한 진화의 과정에서 시아노박테리아는 지금과 같은 다양한 생물의 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초기의 지구 대기에는 산소가 거의 없었지만, 시아노박테리아가 지구상에 등장한 후 처음으로 산소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만들어낸 산소는 처음에는 대부분의 생물들에게 독이었지만 이후에 진화한 생물들에게는 매우 효과적인 물질이었고, 이 산소를 이용하는 복잡한 생물들이 지구를 뒤덮게 된 것이다. 바로 인간도 이들 후손 중 하나다.

고도상수처리 시설의 확대, 보 수문 개방을 통한 유량의 증가, 활성탄이나 조류 살균제 투여, 황토 투여 등 뭔가 다양해 보이는 해결책이 등장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제한요인, 즉 하천과 호수 내의 인과 질소 농도를 줄이지 못하면 결국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여름이 되겠지만, 가을이 되면 아마도 강물은 원래의 빛깔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바로 녹조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을 최적의 시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한 제한요인에 대한 억제책이 되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다른 조건이 충족된다 한들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겠는가?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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