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람들은 한국인들에 비해 '열심히'의 정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용기와 열정이 많이 뒤쳐져 있어요. 그렇지만 머나먼 나라 한국에는 희망이 있다는 걸 느꼈죠."
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국제경쟁부문 초청작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를 들고 2년 만에 다시 제천을 찾은 벨기에 출신 티에리 로로(58) 감독은 10일 시내 한 극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유럽에선 한국 연주자들이 최고라고 여기고 있으며 그건 엄연한 현실"이라고 했다.
75분짜리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는 세계 주요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인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클래식 한류'의 비밀을 좇는다.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로 꼽히는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좋은 예다. 1995년만 해도 1차 예선에 진출한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지만 지난해에는 전체 예선 진출자의 약 30%인 22명이 한국인이었고 최종 본선 진출자 12명 중에선 5명이나 됐다. 소프라노 홍혜란씨는 그 해 한국인 최초로 이 콩쿠르의 성악 부문에서 우승했다.
브뤼셀대학에서 음악학을 전공하고 벨기에 공영방송 RTBF에서 음악 전문 연출가로 일하고 있는 그는 "예전만 해도 한국 연주자들은 기량만 뛰어나고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요즘엔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해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 등을 취재한 감독은 해외 유학파 교수들의 재능과 젊은 연주자들의 열정, 그리고 독일 뮌헨에서 유학 중인 한국 연주자들을 지켜보며 자연스레 비밀이 풀렸다고 했다.
"한국 촬영 일정이 6일밖에 안 돼서 한국인의 어떤 특성이 이 같은 현상을 만들어냈는지 자세히 알아볼 순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의 뛰어난 성과 뒤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겠죠.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다들 긍정적인 반응만 나타냈습니다. '한국 청소년들은 페이스북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면서요."
로로 감독은 2년 전 제천영화제에 '하모니카 전설, 투츠 틸레망'으로 초청돼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한국 사람들의 환대와 친절함에 감동을 받은 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유럽에선 올림픽에서 10개 이상 금메달을 따고 클래식과 영화 부문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이는 한국 자체가 미스터리이고 관심사"라고 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거의 다 보고 비, 보아, 타블로 등 한국 가수들의 이름까지 외우고 있는 로로 감독은 다음에 또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면 한국의 클래식 음악에 대해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느낀 한 가지 미스터리는 결선에 진출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여러 한국인 연주자들이 왜 벨기에로 돌아와 공연을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다들 어딜 가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게 남은 한국 클래식의 마지막 수수께끼입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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