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 2리. 전체 가구 수가 70여 가구뿐인 조그만 마을 비탈진 골목길 어귀가 잔치 분위기로 들썩였다. 군악대 연주가 울려퍼지고, '국가에 대한 헌신!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고 쓰인 플래카드 글자들이 덩실거렸다. 이날은 6ㆍ25 참전용사인 최종현(82)옹 내외가 육군이 지어준 새 집에 입주하는 날. 70㎡(21평) 크기에 방이 2개인 소형 조립식 주택이지만 집들이(준공식)는 서울의 대형 빌딩 못지 않게 성대했다. 김상기 육군참모총장까지 직접 충남 계룡대에서 헬기를 타고 날아와 최옹의 손을 꼭 붙잡고 축하했다.
이날까지 최옹이 지은 지 50년이 훌쩍 넘은 낡은 집에서 온갖 불편을 달게 견디며 살아온 것은 죄책감 탓이다. 6ㆍ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군번 없는 학도병으로 낙동강지구 전투에 참가한 최옹은 그해 12월 육군 11사단에 입대,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정전협정이 임박했던 1953년 7월에는 강원 김화지구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전역과 함께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비참했던 51년 5월 강원 인제 현리전투의 기억이 늘 그를 괴롭혔다. "2개 중대 400여명의 전우 중 살아남은 사람이 4명뿐이었습니다." 최옹은 담담히 회고했다.
집을 고쳐주겠다는 육군의 호의를 선뜻 못 받아들인 것도 그래서다. "육군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집을 지어주겠다고. 안 짓겠다고 잘랐죠. 무슨 호사냐 싶었습니다. 전우들의 희생을 딛고 살아남아 지금까지 산 것만도 죄송한데. 전우들에게 죄를 짓는 거라 여겼죠. 팔순을 넘긴 나이에 살면 얼마나 살겠냐는 생각도 들었고요." 군은 끈질긴 설득으로 최옹의 마음을 돌렸다. 울릉도 출신 1호 장성인 남한권 육군 인사행정처장(준장)은 "나라를 지킨 사람을 예우해줘야 대한민국이 당당해진다"고 말했다.
육군은 지난해부터 6ㆍ25 참전용사들의 주택을 개축해주는 '나라사랑 보금자리' 사업을 벌이고 있다. 최옹의 집은 84번째로, 울릉도에선 최초다. 김 총장이 현직 육참총장으로는 처음으로 육군 부대 하나 없는 울릉도를 공식 방문한 것은 이런 계기에서다. 김 총장은 "62년 전 대한민국이 누란(累卵)의 위기에 놓였을 때 목숨을 바쳐가며 전쟁에 뛰어든 선배들의 위국 헌신을 기리고 작은 보답이나마 할 수 있게 된 것을 뜻 깊게 생각한다"며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받도록 사업을 계속 확대해가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준공식에 참석한 뒤 울릉군 충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고 김봉진 이등중사와 고 박영식 하사, 고 김수택 이등중사 등 3명의 6ㆍ25 참전용사 유가족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전수했다. 최수일 울릉군수에게 울릉도 출신 참전용사 324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도 전달했다. 육군 관계자는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이 첨예한 때 육참총장이 울릉도를 방문한 것은 강한 국토 수호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울릉=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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