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코카잎으로 뒤덮인 넓은 언덕이 아침 안개에 싸여 있다. 아담한 나무집들이 밭 중간중간에 있고 닭과 개가 자유롭게 오간다. 여느 시골과 다름없는 풍경이지만 볼리비아 샤프레 지역에 이런 평화가 찾아온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경찰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많은 것이 변했어요. 그들은 밭에 불을 지르고 형제들을 두들겨 패곤 했죠. 이제는 조용해졌고, 아이들은 내가 겪은 폭력을 보지 않아도 돼요."
원주민 케추아족의 평상복인 벨벳 스커트에 챙 넓은 모자를 쓴 로사 몬타노(여)는 정부가 합법적으로 할당한 코카밭을 경작하고 있다.
전통적인 코카 재배지인 샤프레 지역은 1970년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남미의 마약 재배지 박멸에 나선 후 최근까지 위협에 시달려 왔다. 미 마약단속국(DEA)은 볼리비아의 전체 코카 재배 면적을 118km²로 제한하고 이를 위반할 때는 엄격히 처벌했다. 이 때문에 볼리비아 코카 재배지의 반 이상이 불법으로 전락됐다. 하지만 농민들은 쉽게 밭을 포기할 수 없었다. 코카는 미국에서는 코카인의 원료이지만 볼리비아에서는 신성한 작물이다. 4,000년 이상 종교의식에 쓰였고, 코피를 멈추고 소화를 촉진하고 갈증과 허기를 달래는 약이다. 코카잎을 씹으며 노동자들은 피로를 풀었고, 산모들은 산고를 이겨냈다.
경제적 이유도 컸다. 농민들에게 코카는 거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바나나, 유카, 오렌지는 코카만큼 환금성이 높지 않았다. 2대째 코카를 재배하는 로페즈 바스퀘즈는 "우리는 코카를 팔아 옷을 입었고 건강을 돌봤고 아이들을 길렀다"며 "가족을 유지시킨 유일한 자원은 코카였다"고 말했다.
현지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미국의 무자비한 마약 전쟁은 수십년간 미국과 남미 국가간 갈등을 낳았다. 미국의 원조와 군사력에 의존해온 남미로서는 대안이 없었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코카 재배농 출신의 에보 모랄레스가 농민들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공약대로 이전 방식의 마약 전쟁을 끝냈다. 미 대사와 DEA를 자국에서 추방하고 지난해에는 유엔의 반마약협약 이행도 거부했다. 대신 코카 재배량을 조절하는 '사회적 통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재배 면적을 197km²로 늘리는 대신 코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과잉 생산을 경고하는 교육을 강화했다.
공무원이자 코카를 재배하는 마르티네즈는 "농민들이 어느때보다도 자발적으로 마약 전쟁에 동의하기 때문에 누구도 다치거나 죽는 사고 없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볼리비아의 독자적 마약 전쟁의 열매는 국내 평화에 그치지 않는다. 마약 전쟁을 구실로 남미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해온 미국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의 원조를 2006년 4,000만달러에서 올해 1,000만달러로 줄이는 대신 유럽연합(EU), 미국에 이어 코카인 소비 세계 2위인 브라질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브라질과 접경 지역인 아마존 밀림의 불법 코카 재배를 단속하기 위해 무인 정찰기인 드론을 도입할 계획도 세웠다.
볼리비아의 선례는 다른 남미 국가들에도 확산되고 있다. 2009년 멕시코와 브라질, 콜롬비아의 전 대통령이 주도해 열린 마약 정책에 대한 남미 위원회가 분기점이었다. 이 위원회는 "미국의 억압적인 마약 전쟁은 실패했다"고 선언했고, 초점을 억압이 아닌 예방으로 옮길 것을 촉구했다.
남미에서 마약 시장 합법화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그 이후다. 최근 우루과이는 대마초 시장을 합법화하는 대신 정부가 독점적 판매권을 갖겠다고 밝혔다. 멕시코는 소량이지만 마약의 개인적 소비를 허용했다.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에서는 개인적 소비를 위한 마약 소지는 범죄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남미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 인권단체 워싱턴오피스온라틴아메리카의 존 월시는 "누구도 더 이상 미국의 행진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초국적 기구의 마약 정책 전문가인 마틴 옐스마는 "1980년대 이후 남미를 장악한 미국의 시대가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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