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대구에서 발생한 장중첩과 뇌졸중 환자가 병원을 전전한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응급실 내원 환자를 24시간 전문의가 진료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응급의료 정책의 수립은 의학적 객관성을 기본으로 하고 자원과 윤리 등 여러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법은 앞의 2가지 전제조건, 특히 자원의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이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데 있어 병원전 심정지환자의 생존률을 올리기 위한 노력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병원전 심정지 환자는 발생 후 8분 이내에 제세동을 해야 생존률이 증가한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실제론 무조건 빠를수록 좋다. 환자가 쓰러져 보호자가 판단하고 119에 신고하는 절차에 2분 정도 걸린다. 구급차는 6분 이내에 환자에 접근해 제세동을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급한 환자는 드물다.
1960년대에 북아일랜드의 어떤 병원에서 심장환자 신고에 대해 심장내과 의사가 구급차에 수동식 제세동기를 싣고 출동했더니 생존률이 증가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제세동은 일종의 전기감전이며 심실세동 환자를 살려내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는 악화시킬 수 있다. 수동식 제세동기는 제세동 여부를 사람이 판단하며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한편 미국의 의사들은 화재진압대원에게 심전도 판독을 교육해 출동시키기 시작했다. 인건비나 인력수급의 문제로 의사의 구급차 탑승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병원전 심정지 환자를 모두 살려 내려면 전 국토에 몇 백미터마다 구급차를 배치해 수 많은 구급대원이 드물게 발생하는 심정지 환자발생에 24시간 대비하고, 전 국민을 폐쇄회로(CC)TV로 감시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구급차 자원은 제한되어 있으며 불요불급한 출동은 급한 환자에의 출동을 지연시킨다. 선진국에서는 신고전화 상담자가 환자를 분류하고 급하지 않은 신고에는 현장도착 목표시간을 19분으로 한다. 자원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급한 환자에는 신속히 많은 인력이 출동하고 급하지 않은 환자에서는 반대로 대응하고 있다.
공항과 기차역에 자동 제세동기를 설치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모든 장소에 항상 구급차를 배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 제세동기는 약간의 오류는 있지만, 기계가 심전도를 판독한다.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지만 환자 자신은 아니다. 미국에서 일반 주택에 설치했더니 생존률이 증가하지 않았다.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가 쓰러지거나, 훈련을 받았음에도 가족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내형 제세동기를 개발해 환자가 심실세동에 빠지면 환자 몸 안의 기계가 자동으로 제세동하도록 했다.
최근 의학의 대세는 근거에 입각한 의료다. 과학적 방법론이 미비하던 시절엔 유명한 의사가 치료결과가 좋다고 책에 써 놓았다는 '추정'을 기반으로 의료를 행해 왔다. 하지만 환자에게 해를 미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의사의 의료행위가 환자에게 이익이 될 확률과 해가 될 확률이 반반이 된 것이 불과 100년도 안된 1920년대이다. 그 이전 수천년 동안의 의료행위는 환자에게 해를 줄 확률이 더 높았던 것이다. 미국의 특정 주에서 의료사고시 의사에게 과중한 배상금을 부과하자 의사들이 다른 주로 이주해 버려 배상금 상한선을 설정할 수 밖에 없었다. 신중한 진료를 요구하기 위한 배상금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다. 세계적으로 응급실에서의 전면적인 전문의 진료가 시행된 바 없으며, 이 법의 제정과 관련해 시범사업이 시행된 바도 없다.
자원부족은 인간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땅, 식량, 금, 돈, 물과 대통령 자리가 무한대로 있다면 세상에는 다툼이 없을 것이며 천국일 것이다. 응급실에 내원하는 대부분의 환자는 경증환자이다. 응급실에서 전공의 진료 후 전문의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의 지연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병원의 전문의는 희소한 자원이며 과도한 부담은 응급분야로부터의 이탈이나 외래, 입원진료와 암환자의 수술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모든 국민을 의사로, 모든 의사를 병원 전문의로 만들 수도 없다. 현실적인 대책을 한 단계씩 세워나갈 일이다.
조석주 부산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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