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薄熙來) 전 중국 충칭(重慶)시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에 대한 재판이 7시간 만에 끝난 데 이어 사건에 연루된 충칭시 간부들에 대한 심리도 사실상 하루 만에 종결됐다. 구카이라이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갖고 청두(成都)의 미 영사관으로 도피, 이 사건이 공개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에 대한 재판도 이르면 내주 열릴 전망이다. 가을 권력 교체를 앞둔 중국공산당이 각본에 따라 ‘보여주기 재판’으로 사건을 수습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구카이라이 비호 공안 간부 재판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중급인민법원은 궈웨이궈(郭衛國) 전 충칭시 공안국 부국장, 왕펑페이(王鵬飛) 전 충칭시 공안국 기술수사총대장, 리양(李陽) 전 충칭시 형사경찰총대장, 왕즈(王智) 전 충칭시 공안국 사핑바 분국 부국장 등 4명에 대한 재판을 10일 열었다. 이들은 영국인 닐 헤이우드가 구카이라이에 의해 독살된 사실을 알고도 그녀를 비호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모두 보 전 서기의 부하라는 점에서 보 전 서기와의 관련성이 드러날지 주목됐다. 이들은 이날 구카이라이와 마찬가지로 기소 내용을 순순히 인정했다. 일련의 재판이 구카이라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반면 보 전 서기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왕 전 국장의 재판이 이르면 다음주 청두에서 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가 미 영사관으로 도피한 것은 사형까지 가능한 반역죄에 해당하지만 조사에 협조한 점이 감안돼 극형은 피할 것으로 SCMP는 내다 봤다.
헤이우드, 보과과에 거액 요구하며 협박
구카이라이가 검찰 기소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어느 정도 사전 교감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로 구카이라이는 전날 재판에서 “재판부가 공정하게 판결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헤이우드가 살해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10일 구카이라이의 아들 보과과에게 이메일을 보내 보과과의 소개로 진행했던 부동산 투자가 실패한 데 불만을 표시한 뒤 1,300만 파운드(약 229억원)를 주지 않으면 파멸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법원 대변인도 “살인 동기에서 헤이우드 측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가 이성을 잃고 범행했다면 동정을 살 수도 있다. 구카이라이의 변호인은 전날 재판에서 범행 당시 구카이라이가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의 수갑 안 찬 구카이라이
구카이라이가 재판에서 수의를 입지 않고 수갑도 차지 않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영 CCTV는 구카이라이가 법정에 들어서는 모습 등을 2분 30여초 동안 방송했다. 중국에서 고위층 인사의 재판이 공개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대만 연합보는 이를 좌파에 대한 경고로 분석했다. 32년 전 흑백 화면으로 공개된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 장칭(江靑)의 재판 모습이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대혁명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듯 구카이라이의 영상 공개도 유사한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장칭이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였던 것과 달리 구카이라이는 말끔한 정장 모습으로 공개돼 정반대의 해석도 나온다. 보 전 서기의 영향력이 건재하며 그에 대한 예우가 지켜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공범 장샤오쥔(張曉軍)조차 수의를 입지 않고 수갑을 차지 않았다. 구카이라이에 대한 선고 결과가 이런 의문점을 풀어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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