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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엘 불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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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엘 불리'의 교훈

입력
2012.08.1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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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식당으로 명성을 날려 온 스페인의 레스토랑 '엘 불리'가 지난해 휴업을 시작한 이래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다. 휴업은 2014년까지 계속될 예정인데, 그 이후로는 비영리 음식재단으로 변신한다고 한다. 스페인 카탈루냐 해변의 로지즈 휴양지에 자리하고 있는 이 식당은 외식업계의 권위 있는 영국 잡지 '더 레스토랑'으로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세계 최고의 식당에 선정됐다. 또한 800여 명의 각국 주방장과 음식평론가가 참가한 '2009 산 펠레그리노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도 4년 연속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1961년에 문을 연 이 식당이 50년이 넘도록 그 이름을 날린 비결은 주방장에게 있다. 수석 셰프 페란 아드리아가 과학적 원리를 요리에 접목시킨 '분자 요리'를 선보이면서 단연 요리계의 샛별로 떠오른 것이다. 식당의 공동 대표이자 주방의 책임을 맡은 그는 식당을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만 운영했으며 점심시간에는 문을 닫고 저녁에만 하루 최대 50명의 예약을 받았다. 한 끼 식사가 40가지 요리로 구성된 코스 메뉴의 가격은 한화로 38만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200만 명이 예약을 대기하고 있어 결국 추첨을 통해 손님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식당을 거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요리가 음식이 아닌 예술이라고 상찬했다.

그런데 정말로 놀랍고 중요한 사실은 이 같은 엘 불리의 세속적 평가가 아니다. 10여 년이 넘도록 세계 최상급의 수준을 유지해 온 이면에 남모르는 독특한 비밀이 잠복해 있다. 식당이 쉬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5개월 동안 아드리아는 세계 각국을 떠돌며 요리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창의적 휴식 기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의 마법 같은 요리는 이 휴식의 쉼터·놀터들을 바탕으로 다음번 일터를 예비하는 지혜로움에서 생성된 것이었다. 그는 "엘 불리가 폐업하는 것이 아니라 변모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이 그 휴식의 창의성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말을 남겼다.

이렇게 훌륭한 식당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서 쉬는 것은 어쩌면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근자에 <노는 만큼 성공한다> 라는 제목의 책을 낸 이도 있으나, 이때의 쉬고 노는 것은 단순한 휴식과는 다르다. 오늘의 휴식이 내일의 전투력이 되자면, 그 휴식이 가치 있고 창의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자동차 왕 H.포드가 일은 자동차의 모터요 쉼은 그 브레이크라고 한 바와 같이, 둘 중 하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거나 위험하기 짝이 없게 된다. L.비트겐슈타인은 <반철학적 단상> 에서 안식의 시간은 스스로의 일을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바라보게 하는 힘이라고 적었다.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나폴레옹의 기마대가 한 전투에서 패한 일이 있었다. 그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해 보았더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발견됐다. 패전할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동기는 기병대대의 도착이 늦어 작전에 차질을 초래한 때문이었으나, 그 대대가 늦어진 것은 소속 중대 하나가 늦어진 때문이었고, 그 중대가 늦어진 것은 소속 소대 하나가 늦어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소대가 늦어진 까닭은 한 분대장이 탄 말의 발굽에서 작은 못 하나가 빠진 참으로 사소한 사건에서 말미암았다. 말발굽의 편자 관리를 맡은 병사가 작은 못 하나를 소홀히 함으로서 부대 전체로 하여금 패전에 이르는 쓴 잔을 마시게 했다.

휴식은 바로 이 못 하나를 보살피는 일에서부터 궁극의 승전보에까지 이르는 길의 시발점에 해당한다. 작고하신 필자의 스승 황순원 선생은 생전에 "대패질을 하는 시간보다 대패 날을 가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다"고 가르쳤다. 그렇게 삶의 여정을 관리하며 2년에 걸쳐 그림 한 폭을 완성한 화가가 있다면 그 그림이 이틀 만에 팔리겠으나, 쉬지 않고 이틀 만에 완성한 화가의 그림은 2년이 가도 팔리지 않을 것이다. 이 무더운 여름날에, 우리의 참된 휴식이 어떤 것이어야 할 지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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