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을 만드는 제당업계가 단단히 뿔이 났습니다. 정부가 8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불과 8개월 전 국회에서 부결된 설탕관세 인하안이 또다시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제당업계는 이 법안에 대해 “정부가 설탕업계와 원수라도 진 것이냐”며 격앙된 분위기입니다.
지난해 정부는 물가안정을 이유로 35%인 설탕 관세를 5%로 낮추는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사실상 완전개방이나 다음 없는 급격한 관세인하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저가의 덤핑 물량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와 국내 제당산업은 붕괴된다는 것이 당시 업계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국내에선 정상가격으로 유통되지만 수출용으로는 덤핑가로 판매되는 설탕시장의 독특한 구조 때문입니다. 각국 설탕업체들은 원료를 대량구매하기 때문에 일단 설탕을 생산한 뒤, 소비되지 않고 남은 부분은 원가 이하의 가격에라도 국제 시장에 내다팔고 있습니다. 다만 이 설탕이 바로 수입될 경우 제당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상실되므로 각국은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요. 일본과 유럽연합(EU), 미국, 인도 등의 설탕관세는 70%, 85%, 51%, 60% 등입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지난해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도 35% 관세를 30%로 5%포인트만 소폭 인하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는데, 정부가 또다시 30%를 5%로 낮추자는 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8일 오후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민간위원들조차 “국회에서 이미 결정된 사안을 불과 수개월 만에 다시 발의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의문을 제기했다고 합니다.
제당업계는 폭발 직전의 분위기입니다. 원당가격이 올라도 값을 올리지 못해 적자를 냈는데, 사실상 덤핑수입의 길까지 또다시 열어 놓으려고 하니까 업계는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거죠.
정부가 설탕에 집착하는 이유는 기초식품으로서의 상징성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비생활의 변화로 설탕의 물가 파급효과는 과거에 비해 매우 적어졌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설탕의 비중은 0.03%에 불과하고, 빵 과자 등 2차 식품 원가에서 설탕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6~2.8% 정도(국회 기획재정위 검토보고서)입니다. 이미 할당관세가 적용되고 있으니 기본관세가 내려간다고 해도 물가안정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는 안정시켜야 하겠지만, 산업특성을 무시한 물가잡기가 과연 올바른 방법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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