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때 역전 당한 악몽이 떠올랐다. 200m는 너무 먼 거리였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얼마나 기다려온 올림픽 챔피언이었던가."
올림픽에서만 두 번이나 은메달에 그친 앨리슨 펠릭스(27ㆍ미국)가 올림픽 3수만에 마침내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펠릭스는 9일(한국시간) 런던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여자 200m 결선에서 21초88로 피니시 라인을 가장 먼저 통과해 금메달을 안았다.
7번 레인에 선 펠릭스는 5번 레인에 자리잡은 필생의 라이벌 베로니카 캠벨 브라운(30ㆍ자메이카)을 습관처럼 먼저 살폈다. 캠벨 브라운이 앞선 두 차례 올림픽에서 자신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펠릭스는 '이번 만큼은' 이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출발총성이 울렸다. 100m 코너를 돌 때 까지는 승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직선주로에 들어서자마자 펠릭스가 쭉쭉 뻗어나갔다. 걸림돌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국언론들은 '킬러 스피드'(Killer speed)라고 표현했다. 펠릭스는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골인했다. 자신의 다섯 번째 21초대 기록이었다.
5일 열린 여자 100m 우승자 셸리 앤 프레이저 프라이스(22초09ㆍ자메이카)가 2위로, 100m 준우승자 카멜리타 지터(22초14ㆍ미국)가 3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2004 아테네, 2008 베이징올림픽 챔피언 캠벨 브라운은 22초38로 4위로 경기를 마쳐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
기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펠릭스가 진작에 올랐어야 할 시상대 맨 윗자리다. 펠릭스의 200m 최고기록은 21초69. 현역 랭킹 1위다. 하지만 그는 올림픽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8년이나 돌고 돌았다. 2005년 헬싱키, 2007년 오사카, 2009년 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까지 3연패를 달성했지만 올림픽만큼은 그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펠릭스는 19세의 나이로 첫 출전한 아네테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 단숨에 존재감을 알렸다.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땐 역대 최연소 스무 살의 나이로 200m를 제패해 기염을 토했다. 올림픽 우승이 손에 잡히는 듯 했다. 무대는 베이징이었다. 하지만 펠릭스는 막판 캠벨 브라운에게 역전 당해 또 다시 은메달에 머물렀다. 같은 상대에게 두 번 연속 올림픽에서 완패를 당했다. 지난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여자 200m 4연패에 도전할 때도 캠벨 브라운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 펠릭스는 대구에서 동메달을, 금메달은 캠벨 브라운이 가져갔다.
질긴 악연이었다. 펠릭스는 그러나 올 시즌 21초69로 자신의 최고기록을 앞당기는 호조를 보이며 런던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에 반해 30대에 접어든 캠벨 브라운은 22초 중반대에 그쳐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8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캠벨 브라운을 멀찍이 밀어냈다.
한편 펠릭스의 금메달로 자메이카의 단거리 독주에 제동이 걸렸다. 자메이카는 이번 대회 남녀 100m 금메달을 모두 가져갔다. 남자 200m 우승도 우사인 볼트의 몫이 될 가능성 높다. 펠릭스가 자메이카의 싹쓸이를 저지한 셈이다.
런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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