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화꽃·감나무·사슴벌레 함께 사는 초가삼간…미물이 품고 있는 각각의 우주를 일깨우다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 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들어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안도현의 시'일기'는 어느 가을, 시인의 고즈넉한 하루를 적고 있다. 국화꽃과 사슴벌레와 감나무와 기러기 같은 미물에도 각각의 우주가 있음을, 그 개별적 우주와 소통함으로써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음을, 때문에 이 사소하고 하찮은 일을 기록하는 것이 이 시인에게는 세계를 구원하는 일임을 6줄의 시는 말하고 있다.
안씨는 이 시를 비롯해 100여 편의 시를 전북 완주 작업실 '구이구산(九耳九山)'에서 낳았다. '구이구산'은 바깥세상 이야기를 많이 듣고 많이 쓰라는 뜻으로 안씨의 친구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작업실은 감나무 소나무 단풍나무를 거느린 초가삼간이다. 그가 대학에 자리잡은 후부터는 며칠에 한 번 찾는 별장이 됐지만, 전업 작가였던 시절 안씨의 직장이자 서재였고, 휴식처였다.
15년 전에 매입한 초가삼간 작업실
그의 작업실은 학교(우석대) 연구실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국어교사였던 안씨가 두 번째로 학교를 그만둔 1997년, 전업작가로 살기 위해 작업실을 마련했다. 집 뒤에는 산,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에다, 가축 분뇨 냄새가 나지 않아 "한번 보고 홀딱 반했"단다. 1942년 지은 오래된 초가집이라 집값은 내지 않고 집터 땅값만 쳐서 평당 20만원에 110평을 샀다.
"벌써 15년 전이잖아요. 내가 이 동네 외지 사람 1호거든. 알고 보니 내가 이 마을 땅값을 올려놓은 거야…. 그때 한 10만원만 줘도 살 수 있었는데."
"마을회관 앞에 저 폐가가 이 마을 제일 부잣집이었다는데, 내 작업실이 그 집 주인이 자기 첩한테 지어준 집이래."
그 폐가와 몇몇 초가삼간을 빼면 대부분은 외지인들이 지은 펜션들이다. 안씨의 작업실은 몇 년 전 주황색 양철지붕을 얹어 금방 눈에 띄었다. 집 대문 옆에는 원추리꽃, 뒤뜰에는 금낭화, 돌담 너머에는 개망초꽃이 심어져 있다. 작업실은 15평 남짓. 방 둘에 부엌이 전부다. 요즘은 소설가 백가흠씨가 안씨의 작업실을 빌려 생활하는데, 인터뷰 당일에는 잠깐 서울에 다시 간 참이었다.
"가흠이는 장편 쓴다고 내려왔는데, 그동안 오이도 심어놨더라고."
안도현 시인은 백씨의 중학교 담임이다. 백씨를 비롯해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쳤던 시인들이 몇 달 동안 이곳에서 생활한 적 있다. 안씨가 대학교수가 된 2004년까지만 해도 아침에 출근해 저녁까지 이곳에서 먹고, 자고, 책 읽고, 글 썼다.
"봄 가을 넉 달 동안 정말 좋아요. 감나무 잎이 돋기 시작해서 펼쳐질 때까지. 감나무 잎이 물들기 시작해서 떨어질 때까지."
마당에는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감나무랑 백일홍 빼고 나머지는 내가 살면서 다 심은 거예요. 소나무는 15년 전에 산에 버려진 것을 주워다가 심은 것이고. 소나무 옆이 연산홍. 산딸나무, 단풍나무, 이팝나무…."
이 풍경을 시인은 이렇게 썼다.
'외딴집이다// 둘러보니/ 아기원추리 집 한 채,/ 도라지꽃 집 한 채,/ 뻐꾸기는 집이 여러 채,// 외딴집이 아니다/ 소란스런 마을 한복판이다' ('산가(山家) 1'전문)
몇 년 전부터 딱새가 처마 밑에 둥지를 만들고, 박쥐가 밤마다 찾아오기도 한단다. 안씨는 툇마루와 부엌이 연결된 벽 위쪽, 박쥐가 붙어 있었던 까만 자국을 보여준다.
"가끔 밤에 불을 켜면 박쥐가 벽에 붙어있다가 날아가는데, 그 밑을 보면 박쥐 똥이 떨어져있어요. 내가 안 오면 매일 벽에 붙어 자는데, 내가 와서 박쥐가 배변주기를 놓치는 게 아닌가. (웃음) 박쥐에 관한 시는 그렇게 쓴 거에요."
'누옥에 와서 맨 처음 하는 일은 마루 위의 박쥐 똥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일/(…)/ 밤새 서책이라도 읽을 요량으로 전깃불을 밝히면 박쥐는 나한테 똥 눌 자리를 빼앗겨버린 박쥐는 벽에 납작 달라붙지도 못하고 밤새 얼마나 똥자루가 먹먹할까 생각한다/ 아아, 한낱 서생인 내가 서책 따위를 읽으려고 붉을 밝힘으로써 박쥐가 배변 주기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박쥐 똥을 쓸며' 일부)
"백석 시인을 사랑하고 닮고 싶었다"
"90년대 중반부터 민주화 분위기가 무너졌잖아요. 이때부터 시인이 민주화나 통일을 말해도 효과가 없었죠. 현실이 시보다 빠르니까. 그때 고등학교 교사 하면서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작은 것들을 보기 시작했죠. '돌멩이 하나, 들꽃 하나에도 우주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씨의 시력(詩歷)은 3기로 나뉜다.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1985)에서 네 번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1994)까지가 첫 단계로 이 기간 안씨는 시와 현실의 관계를 집요하게 탐문한다. 외롭고> 서울로>
안씨가 나무, 들꽃 같은 자연에 눈을 돌린 후 쓴 다섯 번째 시집 <그리운 여우> (1997)부터 아홉 번째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2008)는 2기에 해당한다. 내용에 치중한 시에서 탈피해 이 시기부터 말을 줄이고 형식에 치중한다. 말 줄임표, 쉼표, 침묵을 즐겨 쓰는 것도 이때부터다. 미물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작업실 주변 풍경을 비롯해 자연을 묘사하는 시로 나왔다. 최근 출간한 열 번째 시집 <북항> 은 또 하나의 변곡점이다. 그는 완주 작업실에서 다섯 번째 시집부터 <북항> 까지 6권을 냈다. 북항> 북항> 간절하게> 그리운>
이런 변화를 관통하는 것은 백석(1912~1996)의 시다. 안씨는 백석의 시 중에서 자신이 처음 읽은 '모닥불'을 모티프로 두 번째 시집 <모닥불> 의 표제작을 썼다. 대학1학년인 80년, 작고한 시인 박항식의 저서 <수사학> 에서 이 시를 읽고 "내가 학습한 시인들과 뭔가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단다. 안씨는 "88년 해금 조치 이전까지 백석의 새로운 시를 만날 때면 필사적으로 필사했다"고 말했다.'외롭고 높고 쓸쓸한'과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는 백석의 '흰바람 벽이 있어'의 한 구절을 따와 아예 제목으로 삼은 시다.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의 호흡을 빌려 '바닷가 우체국'를 썼는가 하면, '국수'의 형식을 빌려 '북방(北方)'을 썼다. 안씨는 "음식에 관한 시는 거의 백석식(式)으로 쓴 것"이며 "사랑하면 상대를 닮고 싶어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북항> 에는 아예 한국문단에서 백석의 영향을 직간접적 영향을 받은 시인의 계보를 밝힌 '백석 학교'란 제목의 시도 있다. 북항> 수사학> 모닥불>
"백석은 고향과 자연을 노래하면서 시에 주관적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죠. 가능하면 묘사하려고 하고, 형용사를 덜 쓰는 문장을 구사하려고 합니다. 정지용이 고향을 그리움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는데 비해 백석은 왜 아예 고향하고 같이 살아가는 존재죠."
<북항> 은 정치와 시의 미학적 결합체 북항>
안도현의 시는 <연어> 나 <짜장면> 같은 동화와 맞물리며 따뜻하고 단정한 시로 각인됐고, 그를 인기 시인으로 만들었다. 안씨가 백석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대한 관심을 작업실이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지금 여기'의 경험을 통해 나타내고 있음에도 대중은 그의 시를 소비하며 옛 시절의 아득한 고향이미지를 재현한다. 등단작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서 시작해 4대강 공사를 반대한 최근작 '강'까지 시를 통해 상당히 치밀한 사회적 의식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곧잘 묻힌 채로. 평론가 허윤진은 안도현의 시인론 '서한집'에서 '일상 속에서 위로 받고 싶어지는 순간에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청맥(靑脈)처럼 예리한 활력으로 살아 있는 시적 정신이라기보다는, 좀더 받아들이기 쉽게 정리된 몇 줄의 수사인 것 같다'며 '우리는 그의 시에서 우리의 기대를 투사함으로써 그를 변하지 않는 시인으로 박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짜장면> 연어>
안씨가 작업실 기둥에 기대며 말했다.
"나는 시를 굉장히 어렵게 쓰거든요. 수십 번 수백 번 고치면서 쓰는데, 시가 (읽기) 쉬우면 시인이 쉽게 썼다고 생각해요. 이번 시집 쓰면서는 그걸 좀 바꾸고 싶었죠. 나도, 어려운 시 쓸 줄 안다.(웃음)"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안씨는 실제로 이번 시집 <북항> 을 통해 서정시의 형식을 한 차원 끌어올리고 있다. 그는 1기에서 보여준 사회의식, 2기에서 선보인 자연을 통한 의미의 재발견이란 두 주제를 열 번째 시집에서 통합하고 있다. 안씨는 "서정의 갱신에 주안점을 두었다"며 "정치와 시라는 서로 상이한 개체의 미학적 결합을 어떤 형태로 구사할 것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북항>
예컨대 작업실 대문 앞의 원추리 꽃을 보고 쓴 시 '원추리여관'과 '노점'을 보면, 원추리는 '여관'으로 비유되고, 길가에 조성된 꽃밭의 꽃들은 전부 '노점 같은 것'으로 비유된다.
'왜 이렇게 높은 곳까지 꽃대를 밀어올렸나/ 원추리는 막바지에 이르러 후회했다/꽃대 위로 붉은 새가 날아와 꽁지를 폈다 접었다 하고 있었다. 원추리는/ 어쩔 수 없이 방을 내어주고 다음달부터 여관비를 인상한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했다…' ('원추리여관'의 일부)
이런 변화는 환상적 이야기를 통해 작금의 사회구조를 비튼'덕진 연못의 오리 배를 훔칠 수 있다면'을 비롯해'재테크', '파종의 힘' 등에서 두드러진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 '북항'은 백석의 시를 겹쳐 사회적 감수성을 밀도 높게 그린 작품이다. 북쪽 항구를 일컫는 북항은 국내에서 중심부두가 없는 항구를 일컫는 말로 쓰여 목포북항, 인천북항, 부산북항처럼 고유명사처럼 쓰기도 한다. 안씨는 "우리나라 사람한테 '북(北)'이라는 글자는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이상의 복잡한 느낌을 갖고 있다"며 "북한을 떠올리는 경우도 있고, 연민, 증오 같은 감정이 섞여 있다. 이 복합적 상황을 드러내고 싶은 시"라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왠지 北이라는/ 글자에 끌렸다 인생한테 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든지 쾌히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맹서를 저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신하기 좋은 북항,/ 불 꺼진 삼십촉 알전구처럼 어두운 북항,/ 포구에 어선과 여객선을 골고루 슬어놓은 북항,/…/ 나는 서러워져서 그리운 곳을 북항이라/ 하였는데 너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하였다' ('북항'의 일부 )
작업실을 나서며 우리는 내일 북항으로 떠나자고 했다. 사소하고 하찮아 온전한 제 이름조차 얻지 못한 그곳으로, 우리의 개별적 역사 속에서 연민과 증오와 먹먹한 그리움이 뒤섞인 그곳으로, 그리하여 삼라만상을 품은 그곳으로.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전혼잎 인턴기자(한양대 국어국문4)
■ 하루에 3시간씩 트위터 삼매경…팔로워 1만명 돌파 '막걸리 번개'도
꽤 많은 독자들이 안도현 시인을 자연에 묻혀 사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로 생각하지만, 그는 최신 문물과 트렌드에 호기심이 많은 '얼리어답터'다. 작업실로 가는 차 안에서 김범수의 '님과 함께'를 들었던 그는 "남진 리메이크 곡이라 익숙한 거"라는 지적을 받자,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커버스커 앨범을 틀었다. 그런 그가 요즘 꽂힌 것은 트위터. 지난 4월부터 트위터 메시지를 쓰고, '트친'(트위터 친구)들의 어록을 확인하고 일일이 댓글을 다는데, 하루에 3시간씩 보낸다. 강연과 원고 요청이 부담스러워 몇 년 전 휴대폰도 없앤 그가 트위터를 하기 위해 신형 스마트폰을 마련했을 정도이다. 안씨는 "세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게 해줘서 좋다. 140자 이내라는 형식이 시와 살아온, 저를 위한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작업실을 찾던 3일, 트위터 팔로워 1만명을 넘은 기념으로 안씨는 전주 시내 막걸리집에서 '번개'를 제안했다.
'오늘 저녁 7시 00주막 갑니다. 저 아는 척하시면 시원한 막걸리 한 주전자씩 쏘겠습니다! 단, 제 트친이셔야 합니다. 오늘 팔로워 1만명 넘긴 기념으로다가!' (3일 안도현 시인 트위터 @ahndh61)
트위터를 보고 기관사부터 우석대 학생까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주막으로 왔다. 익산에 살고 있는 중고등학교 시절 제자들도 찾아왔다. 막걸리 잔이 부딪치는 중에도 안씨는 이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고 이 자리에 오지 못한 트친들의 '어록'도 소개했다. 적막한 작업실에 앉아 시를 쓰다 때때로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과 잔 정을 나누고 교감하는 시인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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