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검증이 시작됐다. 새누리당은 팀을 꾸려 본격적인 흠집 찾기에 나섰다. 그러고는 몇 가지 의혹을 내놨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이 정도는 먼지에 불과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안철수는 출발선에 늦게 섰다. 남들은 진작에 땡볕에 나와 모진 꼴을 당하는 동안 그늘에서 쉬며 구경하다 느지막이 나온 격이다. 공평하려면 짧은 시간에 강도 높은 '압축 검증'이 불가피하다.
한데 지금까지 나온 검증 공세는 실망스런 수준이다. 재벌 2ㆍ3세 모임인 '브이 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 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낸 것을 비롯해 몇 건이 도마에 올랐다. 평소에 강도 높은 재벌 개혁을 주장해온 안철수로서는, 아무리 10년 전의 일이라 해도 유구무언일 게다. 그러나 이런 식의 언행불일치를 문제 삼는 수준이라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는 과거 대선 경선 때의 '줄푸세' 공약이나 한나라당 대표 시절 기업의 분식회계 유예기간 요청 긍정 검토와 지금의 경제민주화 의제와의 차이를 뭐라 설명할 건가. "그런 것을 우리가 고치려고 하는 것"이라고 안철수의 구명 운동을 나무랄 자격이 있나 싶다. 본인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적인 태도로 보일 뿐이다.
새누리당의 검증은 오로지 '도덕군자 안철수'를 깨부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철수가 성인(聖人)인 것처럼 행세하는데 어디 보자는 식이다.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 횡단한 사례를 찾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국민들이 궁금한 것은 정치 경험이 없는 안철수가 국가 지도자가 될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 지다. 도덕군자나 성인의 얼굴이 가면인지 아닌지 확인해 달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 감이 되는지, 안 되면 왜 안 되는지를 그럴 듯하고 수긍할 만한 사례로 보여달라는 것이다.
안철수는 이미 '바람'이 아니라 '현상'이다. 그의 사실상 공약집인 은 보름 만에 50만부 넘게 출고되는 등 연일 신기록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대선 경선은 안철수라는 태풍에 휩쓸려 실종됐다. 웬만한 '안철수 때리기'는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안철수 지지층의 핵심은 정치 혐오증을 가진 중도층이어서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대립각을 세우면 세울수록 박근혜의 중도층 지지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정치권의 검증 공세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의 지지율이 요지부동인 까닭을 읽어내야 한다.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니다. 대중과 제도권 정치 사이에 간극이 벌어진 책임은 정치권 전체에 있다. 지난 5년간 보수정권의 부도덕과 앞선 10년간 진보정권의 무능함의 결과다. 정치인들이 늘 서민을, 국가를 앞세웠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한 것이었음을 이제 대중은 다 안다. 당장 새누리당에서 벌어진 공천뇌물 파문이 그렇다. 겉으론 개혁을 내세웠지만 뒤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철수를 '백마 탄 초인'으로 보는 대중의 시각은 걱정스럽다. 사회 양극화도 해소되고, 청년 실업도 풀리며, 사교육 경쟁도 사라지게 하는 '힐링 안철수'를 꿈꾸는 거 아닌가 싶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릴 거라는 기대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말아먹을 거라는 말만큼 극단적이다. 우리는 그 생생한 사례를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보고 있다. 5년 전 그가 대통령이 되면 한밑천 두둑하게 건질 것처럼 환상을 품었다. '청계천의 기적'보다 훨씬 큰 뭔가를 보여줄 거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결과는 지금 보는 그대로다. 경제는 도탄에 빠졌고, 도덕은 땅에 떨어졌으며, 정치는 여전히 싸움박질이다. 막연한 기대와 이미지만 보고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한 탓이다.
안철수는 영웅도 아니고 메시아는 더더욱 아니다. 항간의 말대로 '착한 이명박'이 될지도 모른다. 거품이라는 폄하도 맞지 않지만, 영웅시하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안철수는 안철수 그 자체로 봐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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