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보증수표' 최동훈(41) 감독이 또 한 번 '잭팟'을 터뜨렸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영화 '도둑들'을 보기 위해 6일까지 13일 동안 전국에서 727만 관객이 몰려들었다. 평일에도 하루 40만 가까운 관객이 드는 지금 기세대로라면 1,000만 돌파는 물론이고 '괴물'(2006)이 세운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1,301만명)을 깰 수도 있다.
'도둑들'은 최 감독 작품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홍콩의 도둑 10인이 모여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줄거리를 보면 '범죄의 재구성'(2004ㆍ관객 250만명)이 떠오르지만, 인물들간의 내밀한 감정 관계는 '타짜'(2006ㆍ684만)를 연상시킨다. 액션 연출은 '전우치'(2009ㆍ610만)보다 진일보했다.
"단점이 많지만 내가 연출한 것 중 가장 재미있는 영화"라는 최 감독을 6일 만났다. 불볕더위 속의 '도둑들' 매진 사태에 대해 그는 "신기하고 낯선 경험"이라며 다소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도둑들' 흥행에는 40대 이상 관객 반응이 한 몫 했다.
"놀라운 일이다. 장르 자체가 B급 영화 성격이 강하고 흥행에도 어떤 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둑들'은 그걸 좀 넘은 듯한 느낌이다. 나는 1,000만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감독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이 영화 흥행도 '타짜' 기록만 넘었으면 했다. '도둑들'이 잘 되는 건 배우들의 매력 때문인 것 같다."
-그 동안 만든 영화 네 편 중 셋이 범죄물이다. 범죄 영화에 끌리나.
"나쁜 짓 하러 모여서 다른 짓 하니까 재미있는 거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영화라는 것에 대한 내 동경과 흥분의 총체는 서부영화와 누아르였다. 내가 찍고 있는 영화는 변형된 서부영화이고, 변형된 누아르다."
-'도둑들'을 보고 1980, 90년대 홍콩영화를 떠올린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고등학생 때 많이 봤으니까 영향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홍콩영화를 많이 보긴 했지만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다. '캐릭터들의 감정이 너무 격렬하지 않나' 하는 식으로."
-'도둑들'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다양한 관객들의 입맛을 맞추는 게 쉽진 않을 듯하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가장 큰 두려움은 대중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결국 표준적 대중으로 감독 자신을 삼게 된다. 네 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점점 변해가고 있다. 다음 영화를 준비하는 데 내게 필요한 자세는 이런 거다. 영화라는 건 보편적인 상식과 내 편견을 조율해 가면서 찍는 거라는 것. 편견은 취향의 극단적인 표현인데 내 취향과 편견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둑들'은 지금까지 만든 세 편의 영화가 하나로 융합된 느낌이다. 다이아몬드 강탈 과정과 도난 당한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도둑들 사이의 추격전 그리고 두 이야기를 아우르는 도둑들 사이의 순정 로맨스까지.
"내 안에서 계속 형식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범죄의 재구성'은 회상을 영화 중반까지 계속 썼고, '타짜'는 열 개의 장으로 나누는 방식을 취했다. '전우치'는 순서대로 갔다. '도둑들'을 만들면서는 일반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피하고 대여섯 개 긴 시퀀스의 결합으로만 영화를 끌고 가면 어떨까 싶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처럼 각 시퀀스마다 클라이맥스가 있는 것이다. 4악장 구조라면 4악장만 파국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산에 모두 모이는 부분이다."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과정은 사실 맥거핀(특정 사물을 주요 요소인 양 보여주며 주의를 돌리는 속임수)인데 너무 길지 않나.
"맥거핀인 걸 모를 땐 그 과정이 절실하기 때문에 길어야 했다. 우리 모두 마카오 박에게 속아야 하는 거다. 극을 구성하는 나의 논리는 단순하다. 재미가 있으면 넣고 없으면 빼는 것. 감독은 재미를 위해 지속시간과 템포를 결정한다."
-멜로적 요소 때문에 영화의 속도가 느려지기도 한다.
"빠르게 달리다가 속도를 멈추는 걸 해보고 싶었고 그게 영화 곳곳에 드러난다. '범죄의 재구성'은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관객보다 빨리 달리도록 했고 '타짜'는 속도가 헷갈리도록 했다. '도둑들'은 관객보다 빨리 가거나 때론 늦게 가는 영화다."
-김윤석의 빌딩 외벽 액션이 인상적이다. 액션 연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
"사실적인 액션처럼 찍겠다는 것이었다. 액션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밑밥 같은 거니까. 액션이 목적이 아니라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찍는 것이다. 액션 장면에서도 결국 연기가 제일 중요하다."
-전지현이 연기한 예니콜에 대한 반응이 좋다. 처음부터 전지현을 생각하고 쓴 건가.
"영화를 구상하기 전에 우연히 전지현을 만났는데 생각보다 무척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전지현의 장점을 더 키워 예니콜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톱스타들이 대거 모여, 촬영 현장에서 배우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굳이 통제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됐다."
-다음 영화는.
"생각 중이다. 경찰 영화를 찍고 싶기도 하고 화이트 칼라 범죄도 다뤄보고 싶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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