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욕망과 관점을 평준화시켜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킨다. 대학로가 자본에 종속된 지는 오래다. 서울연극협회는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 새 극장 공간 '예술공간서울'을 만들고 지난 2일 탈 자본의 새 거점 탄생을 선언했다. 협회가 직접 운영하는 또 다른 극장 정미소와 달리 예술과 실험, 혹은 예술성을 화두로 잡았다.
그곳은 "연극쟁이들은 좋아하지만, 일반인들은 갸웃거릴 작품"을 위한 공간이다. 송형종 예술감독이 말했듯 "창의적 연극 인력이 이벤트나 영화판으로 유출되는 현실에서 그들을 수용할 구체적 대안"으로 마련됐다. 1년째 비어 있던 구 마방진 극단의 공간을 두 달 동안 리모델링 해 만든 이 극장은 이를테면 연극 버전의 독립 영화사다.
개관 선언으로 '다르다, 충돌한다, 지속적이다'를 내건 이 극장에 기획자의 입김은 자취를 감춘다. 수지 타산보다 예술성 짙은 작품을 선별해 내는 필터를 자임하기 때문이다. 지춘성 운영위원의 말을 빌면 "소극장용 우수한 작품이 설 수 있는 곳"으로 변하기를 꿈꾸는 곳이다. 그러나 6~7할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는 이 시대와 공존하겠다는 의지다.
"교활하고, 천박하고, 어처구니없는 세상에서 연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누군가는 답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일궈냈다."장용철 운영위원은 대자본에 압살돼 가는 대학로에서 연극이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를 경고했다. 실험과 예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이들은 실천적 전략을 밝혔다. "예술 감독 중심의 작품이 선 보이는, 차세대 연극을 위한 공간이다."박장렬 서울연극협회장의 대전제다.
17일부터 12월 30일까지 7개의 작품이 오른다. 개관 기념 기획 공연이라는 깃발 아래 도열한 작품들이다.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를 적극 검토 중이다.
'안네의 일기'를 각색, 성과 사랑의 문제를 내세우며 전쟁의 궤멸성을 그리는 '숨은 집'이 테이프를 끊는다(이현빈 각색ㆍ연출, 17일~9월 2일). 작가 백가흠 특유의 기괴한 상상력을 연극적으로 재구성한 '귀뚜라미가 온다'(9월 8일~23일), 도시 젊은이들의 살인 사건을 그린 '찬란한 오후'(9월 27일~10월 14일) 등이 뒤를 잇는다. 연극의 렌즈에 비친 우리 시대의 모습은 어떨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대한 대조적 해석이 잇달아 공연되는 별난 자리도 마련된다. 맥베스를 욕망의 화신으로 그린 극단 소금창고의 'Shouting Macbeth', 평생 고시 공부하다 괴물이 된 남자 이야기를 다룬 극단 이음의 '불면'이 10~11월 잇달아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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