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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롬니와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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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롬니와 올림픽

입력
2012.08.0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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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가 참 피곤하다. 하지만 즐거운 피곤이다. 한국 선수들이 연일 런던에서 보내오는 낭보를 보고 있자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에게는 남의 잔치처럼 여겨졌던 종목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보면 전율을 느낄 정도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 새벽 시간까지 뜬 눈으로 잠을 설쳐야 하는 게 고생스럽지만, 우리 선수들이 주는 감동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각국 정상들에게도 올림픽은 특별한 행사인 모양이다. 앞다퉈 런던을 찾아 자국 선수들을 응원하고, 때로는 경쟁국의 심사를 긁는 발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대회 초반 자국 선수들이 '유럽의 앙숙' 영국보다 좋은 성적을 내자 "영국이 프랑스 선수단을 위해 레드카펫을 깔아준 것에 감사한다"는 자극적인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함께 유도 경기장에 나타나 결승전에 오른 자국 선수를 응원했다. 유도 유단자인 푸틴의 성원에 힘입어서인지 러시아 선수는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과의 인연을 생각할 때 누구보다 주목받는 인사는 1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대선 맞대결을 벌이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다. 공화당 대선 후보 자격으로 첫 해외순방길에 오른 그는 영국에서 "(런던 올림픽이) 얼마나 성공적일지 모르겠다"고 해 영국 정부와 언론의 비난을 샀다. 보안과 출입국 문제 등을 지적한 것이었지만, 자신을 알리려고 간 나라에서 그 나라의 가장 큰 잔치에 재를 뿌리는 듯한 발언은 적절한 행동이 아니다. 롬니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올림픽에 관한 한 자신이 어느 지도자들보다도 많은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롬니는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다. 그가 조직위원장으로 임명된 1999년 당시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 조직위는 그야말로 난파 직전이었다. 대회 유치 과정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에게 뇌물을 준 것이 드러나 위원 6명이 무더기로 퇴출됐고, 전임 조직위원장이 옷을 벗었다. 후원업체의 계약 취소가 잇따라 대회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그대로라면 4억 달러에 가까운 적자가 불가피했다. 전해 터진 전대미문의 9ㆍ11 테러로 보안 위협까지 부각되면서 훗날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올림픽 개최를 고수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롬니는 기업 최고경영자로서의 경력을 십분 발휘해 이런 올림픽을 1억 달러 흑자로 바꿔놓았다. 모교인 하버드대학이 그의 올림픽 경영 수완을 케이스로 삼아 학생들에게 가르쳤을 정도였다. 물론 대회 기간 중 끊임없이 터져 나온 편파 판정으로 '근대올림픽 역사상 가장 추악한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지만(쇼트트랙의 김동성 선수가 미국의 안톤 오노에게 억울하게 금메달을 뺏긴 것도 이 대회였다), 롬니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정치력을 미국 전역에 알리는 발판이 됐다는 점에서 각별한 대회였을 것이다. 사실 올림픽조직위원장은 롬니에게는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롬니는 1994년 정치 입문 후 처음 도전한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테드 케네디(2009년 사망)에게 패배, 대를 이은 대권 도전의 꿈이 꺾인 상태였다. 그의 아버지 조지 롬니도 68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나섰다 실패했다. 그가 올림픽이 열린 그 해 말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대선 후보 자리까지 거머쥔 것은 올림픽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롬니는 상원의원과 주지사 선거 당시 "나는 레이건이나 부시 같은 당파적 공화당이 아닌 온건한 공화당을 원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상원선거에서 떨어진 직후에는 "이길 수 없는 선거에는 결코 출마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가 런던올림픽을 보면서 10년 전의 솔트레이크올림픽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할 텐데, 롬니의 이런 다짐들이 점점 퇴색하는 걸 보니 그 때처럼 선거 승리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황유석 국제부 부장대우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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