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기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가계부채 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정책 당국에 주문했다. 가계부채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KDI까지 관련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서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김영일 KDI 연구위원은 5일 내놓은 '가계부문 부채상환 여력의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상당 수가 상환 여력이 있는 가구를 중심으로 분포해 충격에 대한 완충여력이 적지 않지만, 경기둔화 가능성과 유럽 재정위기 심화 등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는 만큼 극단적 시나리오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KDI가 최악 상황을 전제로 한 거시경제 대책을 주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는 또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거시경제 여건이 악화하면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이 급속히 하락하고, 자금 중개기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만 가구를 대상으로 이뤄진 '2011년 가계금융조사'를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40%의 보유 부채가 총 부채의 73%이며 이들 가구의 소득과 순자산은 전체의 76%와 75%로 보유 부채비중을 약간 웃돈다. 이는 절대 액수는 확인할 수 없지만, 상위 40% 계층은 하위 계층보다 상대적으로 상환여력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소득 대비 재무여력과 순자산 비율을 토대로 분석하면, 하위 계층의 열악한 상환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비와 부채 상환액이 소득액보다 많고, 부채가 순자산보다 많은 '취약부채 가구'의 비율이 하위 계층에 집중됐다.
하위 소득 20% 계층의 경우 해당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4배나 높았다. 김 연구원은 "이들 계층은 경기 부진으로 인한 소득감소나 자산가격 하락 등의 충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득 하위 20%가 보유한 부채 규모는 전체 부채의 3.8%에 불과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가구의 상환여력이 전국의 다른 지역보다 다소 높았다. 소득 대비 재무여력이 10% 미만, 부채 대비 순자산여력이 20% 미만인 비중이 4.44%로서 전국(4.95%)보다 다소 낮았다.
KDI는 이에 따라 상환 능력이 약해진 가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취약부채 가구는 경기 침체 때 부실 가구로 급격히 전락할 우려가 있어 실태를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며 "비은행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세와 해당 차입가구의 부실위험이 높은 상황이므로 차입자의 상환위험을 고려한 대출관행이 정착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부동산 거래 활성화와 유동화를 지원하기 위한 조세정책과 금융지원 방안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다만 "단기적 경기부양 목적의 금융규제 완화 등은 정책 불확실성을 확대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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