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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맨홀' 폭력 아빠의 외로운 죽음, 혼돈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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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맨홀' 폭력 아빠의 외로운 죽음, 혼돈의 아들

입력
2012.08.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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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박지리 지음ㆍ사계절 발행ㆍ276쪽ㆍ1만원

폭력가정의 피해자에서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가 된 열아홉 소년 이야기다. 청소년소설 <합★체> 로 2010년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작가의 두 번째 작품. 인간 존재의 불가해성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깊고 깜깜한 맨홀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낸다.

매일 밤 폭력을 휘두르던 악인 아버지는 봉재공장 화재현장에서 열여섯 명의 목숨을 구하다 순직하고 소방영웅이 됐다. 아버지를 죽이는 상상만 하던 주인공은 그토록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됐건만 까닭 모를 분노에 휩싸여 방황한다.

의처증 남편에게 맞고 살면서도 다음 날이면 아무일 없다는 듯이 출근 준비를 돕는 답답한 엄마. 악마 같은 남자 밑에서 살아야 하는 어린 여자아이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일 뿐이라며 현실을 부정하다 진짜 연극배우가 되어 집을 떠난 누나. 두 사람은 그러나 아버지가 죽자 가족의 정체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해 아버지를 좋은 사람으로 둔갑시킨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실망해 바깥으로 돌다가 우발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살해하고 만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일까.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 덕분에 주인공은 사건에 연루된 다른 친구들보다 관대한 판결을 받고 재활센터에서 생활하게 된다. 동료 대원들과 화재 생존자들이 선임해준 유능한 변호사가 주인공의 범죄를 하루 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상심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포장해버린 것이다.

재활센터 수용 당시와 과거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입체적으로 구성한 소설은 촘촘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맨홀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누나와 함께 달아난 피난처였으나 아버지의 훈장과 감사패를 갖다 버리고 시체를 숨기는 거대한 암흑의 공간이다. 삶이란 때로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를 씁쓸하게 보여준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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