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편이 수 억 원대의 보험금을 노리고 '킬러'를 고용해 중국에 머물고 있던 30세 연하 부인을 살해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남편과 청부살인업자는 범행을 극구 부인했지만 범행현장에 남겨진 범인의 DNA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7년 전 부모를 따라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로 이주한 A(23)씨는 고국이 그리워 2010년 홀로 귀국했다.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외롭게 지내던 A씨에게 지난해 7월말 김모(53)씨가 접근했다. 여성편력이 화려한 김씨의 호의와 경제적 도움에 A씨는 쉽게 넘어갔고, 두 달 만에 혼인신고까지 했다. A씨는 김씨가 이혼남에 전과 15범이란 것을 까맣게 몰랐다. 자신에게 3억6,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생명보험 가입을 그토록 강요한 이유도 당시엔 깨닫지 못했다.
빚에 쪼들리던 김씨는 마수를 드러냈다. 올 6월초 교도소 동기인 이모(55)씨에게 칭다오 처갓집에 간 A씨의 살해를 청부했다. 중국으로 건너간 이씨는 6월 27일 칭다오 시내의 한 공원에서 A씨를 목 졸라 살해 한 뒤 우발적 성폭행 살인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 A씨의 바지를 벗겨놓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른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외국인에 대한 수사가 쉽지 않은 중국을 범행장소로 택했고,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폰 5대를 사용할 만큼 주도 면밀했다. 그러나 김씨는 A씨 살해 직후 마약사범으로 붙잡히며 계획이 틀어졌다.
중국 공안으로부터 한국인 살해사건을 통보 받은 경기경찰청 제2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부부간의 나이 차이가 비상식적으로 큰데다 수상한 보험가입, 출입국기록 등을 종합해 김씨와 이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씨가 6월 30일 귀국 뒤 곧장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으로 김씨를 면회하기 위해 달려간 것이 큰 단서였다. 당시 입회 경찰관이 작성한 대장에는 "공사 대금 언제 주냐" "이번에 잘못되면 난 죽는다"는 이씨 발언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김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이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지만 이들은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 정황 증거는 충분해도 물적 증거가 없는 상태라 재판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일 중국 공안이 보낸 문서 한 장이 경찰에 도착했다. A씨 살해에 쓰인 핸드백 끈에 남은 DNA와 이씨의 DNA가 동일하다는 감정서였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현장이 중국이라 국내에 증거가 없어 수사가 어려웠지만 중국 공안의 유전자 감시 결과로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됐다"며 "A씨가 김씨 같은 사람을 만난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정부=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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