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가 수면유도제 투여 후 숨진 여성환자의 시신을 내다버린 희대의 사건에 대해 여러 의혹들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계 전문가들이 피의자인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45)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더욱이 사건 이후 불투명한 김씨의 행적에 비추어 단순 의료사고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미다졸람 5mg에 사망?
서울 강남구 신사동 H산부인과 전문의인 김씨는 "30일 오후 10시30분쯤 평소 친분 관계가 있던 숨진 이모(30ㆍ여)씨에게 수면유도제인 미다졸람 5mg을 투약했고 2시간 30분 뒤 이씨를 깨우러 갔지만 이미 숨져있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피곤하니 수면유도제를 놓아달라"는 이씨의 요구에 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가 소속돼 있는 병원 원장 조차 "미다졸람 5mg을 투약해서 호흡곤란 증세가 나오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미다졸람은 통상 몸무게 1kg에 비례해 0.07mg 정도 투약하는 게 정량으로, 5mg은 성인에게 투여하는 일반적인 처방이라는 게 병원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씨가 부작용이 나올 수 없는 정상 투약을 했다는 얘기지만 피해자가 극도의 허약상태가 아니라면 김씨가 다른 약물을 주사했거나 미다졸람을 과다 투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을 해봐야 김씨 진술의 정확성을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의사윤리 내던진 시신 유기 왜?
김씨의 행적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사체유기다. 의사라면 누구나 의료사고를 겪을 수 있고 흔치는 않지만 사망사고도 나온다. 하지만 의료사고를 숨기기 위해 시신을 내버리는 경우는 예를 찾기 어렵다. 김씨는 "병원에 누가 되고 내 인생도 끝이 날 것 같아 시신을 버렸다"면서도 돌연 사체유기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자수했다. 더구나 김씨와 이씨는 3~4개월에 한번씩 사적인 만남을 가져왔던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김씨의 판단실수일 수 있지만 의료인의 윤리나 처벌이 중하지 않은 의료 사망사고의 경우를 놓고 보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김씨가 처방전 없이 미다졸람을 투여했다고는 하지만 정량을 투여했던 상황이다. 또 업무상 과실치사(5년 이하 징역)보다는 사체유기죄(7년 이하 징역)가 더 중하다. 2007년 의사 과실에 따른 마취 사망사고 때 담당의사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병원 밖 3시간 행적 묘연
김씨는 이씨가 숨지자 31일 오전 2시30분쯤 시신을 자신의 승용차에 옮겨 병원을 떠났고, 병원의 응급진료 연락을 받고 오전 5시30분쯤 병원으로 돌아왔다. 이 3시간 동안 김씨의 행적이 묘연하다. 경찰이 숨진 이씨를 발견했을 당시 속옷이 찢어져 구멍이 나 있었고 속옷 안쪽으로 흙이 들어가 있어 성폭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씨 진술로 보면 이씨의 시신은 병원을 나온 뒤 줄곧 승용차 안에만 있었다. 2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씨 시신을 부검했으나 외관상 외상이나 성폭행 흔적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성폭행 여부는 DNA 정밀 분석이 이뤄진 뒤에나 판단이 가능하게 됐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날 김씨에 대해 사체 유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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