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못하는 언어 장애인인줄 알았는데, 4시간 가까이 전기방망이로 지지고 때리니까 조선말로 '나는 조선(북한)인이다. 조선으로만 보내지 말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탈북자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2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만난 재중동포(조선족) 이규호(41)씨는 과거를 회상하며 한참 동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전날 "중국에서 공안(경찰)으로 일하면서 1996년 북한이탈주민(탈북자)를 전기고문 했다"고 양심선언 했다.
1995년 8월부터 2002년 4월까지 조선족과 탈북자들이 많이 모여 있어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허핑분국 시타지역 파출소에서 공안으로 일했던 이씨. 그는 중국 공안에 잡혀 114일간 구금돼 있다 최근 귀환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가 전기고문을 당했고 중국정부가 이를 알고도 사실상 묵인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 공안의 경우 가장 먼저 체포된 사람의 출신 성분을 따집니다. 이에 따라 고문이나 가혹행위 수준을 결정하죠. 탈북자의 경우 북한 정부의 특별한 요청에 따라 지방 정부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일을 벌이기도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국적의 주요인사에 대한 처분을 중앙 정부 지시 없이 지방의 공안이 결정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이씨는 지금도 탈북자 등에 대한 중국 공안의 탄압이 극심하다고 했다.
이씨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1년에 2, 3차례 특별단속기간을 정해 외국인 범법자를 일제히 잡아들이는데, 주로 탈북자가 손쉬운 목표가 된다. 개별 공안원의 경우 상부에서 내려온 검거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없는 죄도 만들어 씌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 최말단 파출서에도 전기방망이 같은 고문 장치가 모두 갖춰져 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1996년 탈북자 등 외국인 범법자 한 사람을 잡으면 500위안의 포상금을 줬죠.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큰 돈입니다. 승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실적이 좋은 공안들끼리 용의자를 돈으로 사고 팔 정도였습니다."
이씨는 2002년 아무런 이유 설명도 없이 해고된 뒤 강제 해고 당한 다른 공안 20여명과 함께 복직을 위한 싸움을 해오다 2010년 방문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다. 현재 일용직 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는 이씨는 올 2월부터 '탈북자 강제송환 반대 촛불집회'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이씨는 "한국 사람들이 조선족과 탈북자의 인권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죄인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돼 양심고백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아버지는 94년 돌아가실 때까지 한국 얘기만 했죠. 내년이면 비자가 만료되는데, 중국에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이번 일로 중국에 남아 있는 외동딸(13)이 혹시나 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지…."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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