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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올림픽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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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올림픽의 '저주'

입력
2012.08.0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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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 주경기장. 폐막식 현장 취재를 위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전 광판을 통해 마지막 경기인 마라톤을 지켜보다가 기자는 경악했다. 37㎞지점을 앞두고 2위 그룹을 1㎞이상 따돌리며 선두를 달리던 브라질 선수가 갑자기 코스로 뛰어든 괴한에 의해 인도로 끌려나갔다. 이내 경기 진행요원이 개입해 다시 코스로 돌아왔지만 그는 페이스를 잃고 결국 3위로 골인했다.

기자는 8년전 한달 가까이 아테네에 머물며 하계올림픽을 취재했다. 우리의 메달 밭인 체급종목(유도, 레슬링, 권투, 역도 등)을 맡았는데, 올림픽 메달 획득은 단순히 실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4년 동안의 와신상담 끝에 올림픽에 도전하는 선수들은 수많은 우연적인 상황에 맞닥뜨린다. 우선 시차와 날씨 변수부터 선수촌의 음식, 숙소의 에어컨 강도에 이르기까지 경기력에 모두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체급경기에 나선 선수들은 경기 전날 계체량 통과를 위해 살인적 감량을 해야 하는 게 다반사다. 이렇게 체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경기장의 터질듯한 긴장감, 국민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 등이 겹치면 제 컨디션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물론 여기까지 잘 해왔다 해도 하루 종일 예선부터 결승까지 치르는 과정에서의 대진운과 예기치 못한 부상, 늘 단골로 빠지지 않는 편파적인 심판 판정이나 뜻하지 않은 오심 등을 또 넘어야 한다. 참가 자체만으로도 축복이 돼야 할 올림픽 무대에만 서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른바 '올림픽의 저주'에 시달리는 선수들이 적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올림픽의 저주가 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국가 경제와 브랜드를 한 차원 높이기 위해 잔치를 벌이는 개최국들도 가장 빠지기 쉬운 마법 가운데 하나다. 아테네 올림픽도 그랬다.

사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지구촌의 불황에 아테네올림픽이 기여(?)한 바는 지대하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당시 그리스는 올림픽 특수로 사상 최대의 호황을 구가했다. 2001년 유럽연합(EU)가입으로 쏟아져 들어온 저금리자금이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건설ㆍ주택 등으로 몰리면서 부동산 광풍을 부채질했다.

고대올림픽의 발상지이자, 근대 제 1회 올림픽 개최 이후 108년 만에 다시 올림픽을 열게 됐다는 자부심, 그렇게 바랐던 EU가입이 이뤄져 유럽 변방에서 중심부로 진출하게 됐다는 자신감이 올림픽 특수와 만나 아테네의 밤은 불야성을 이뤘다. 새벽 2시가 넘도록 중심가인 신타그마 광장 주변의 음식점들은 빵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수블라키(그리스식 꼬치구이) 등 각종 음식과 술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그리스는 당시 올림픽예산으로 16억 달러(약 1조8,000억원)을 책정했지만, 실제론 그 10 배에 달하는 160억 달러를 썼다. 이는 경제규모가 8배나 큰(지난해 기준) 영국이 2012 런던 올림픽에 쏟아 부은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거칠게 단순화하면 흥청망청 댄 아테네 올림픽의 저주가 지금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해도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 재정적자 심화→유럽 재정위기→글로벌 경기침체의 첫 머리에 '빚더미 올림픽'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저주의 마법에서 풀려나는 길은 무엇일까. 6년 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우선 런던이 아테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일부 경기장들을 조립식으로 짓고 경기 후 해체해 수출하는 계획을 세우는 등 부채 및 경기장 사후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요즘 급격히 움츠러 들고 있는 우리 경제를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은 역설적으로 런던 올림픽을 더욱 철저히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우리 선수들을 응원ㆍ격려하는 함성 속에서 소비가 늘어나고, 각자 다시 뛰겠다는 삶의 의욕이 충만해진다면,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경제는 바로 심리'라고 하지 않는가.

박진용 산업부 차장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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