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못 먹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뭐가 들어 있는지 못 믿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농약이나 중금속 등이 들어 있는 불량 한약재가 시중에 유통됐다며 심심찮게 들리는 소식이 이 같은 불신을 키우는 데 큰 몫을 한다.
약으로 쓰이는 한약재와 식품으로 쓰이는 한약재는 다른 검사과정을 거친다. 의약품 한약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정한 검사소에서 대한약전의 기준에 따라 곰팡이나 상한 부분 등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약효성분이 일정량 이상 들어 있는지, 농약이나 중금속 같은 유해물질이 남아 있는지를 정밀검사로 확인한 뒤 한방의료기관에 공급된다.
식품으로 쓰이는 한약재는 농산물이나 약용작물로 취급된다. 식품공전의 기준에 따라 유해물질 검사를 하지만, 의약품 한약재에 비해 허용기준이 느슨한 데다 유통되는 전량을 검사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약효성분 검사는 자체 기준에 따라 별도로 하는 업체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업체에선 사실상 어렵다. 일부 건강원이나 식당 등에서 써서 문제가 된 불량 한약재는 이처럼 식품으로 유통되던 게 많다.
결국 식품으로 유통되는 한약재는 '약'의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불량 한약재가 적발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많은 소비자들은 한의원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한 한의사는 "불량 '식품' 한약재 보도가 나올 때마다 환자가 눈에 띄게 준다"며 "식당에서 한방메뉴는 맘 놓고 먹으면서 한약만 의심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약으로도 식품으로도 쓰일 수 있는 식약공용품목 때문이다. 감초나 복분자, 산수유, 당귀, 황기 등을 포함해 국내에서 식약공용품목으로 정해져 있는 한약재는 187가지다. 같은 한약재가 한의원에서도, 건강원이나 마트, 식당에서도 팔리니 소비자의 눈엔 그게 그거로 보인다. 하지만 한의원에서 처방 받아 먹는 감초와 건강원이나 마트에서 사먹는 감초는 유효성분이나 유해물질 함량, 위생상태 등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성분이 약효를 내려면 정해진 용법과 용량을 지켜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성분은 약이 아니라 되레 독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식약공용품목에 속해 있는 적잖은 한약재를 처방을 거치지 않고 먹었을 때 부작용이 생긴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복분자도 잘못 먹으면 배탈이나 설사, 구토를 하거나 몸이 붓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식품으로 검사 받은 한약재를 의약품으로 둔갑시키거나, 의약품으로만 쓸 수 있는 한약재를 건강보조식품으로 만들어 파는 경우도 이처럼 약과 식품의 경계가 모호함을 악용한 것이다. 한 예로 최근 인터넷에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팔린 마황은 식약공용품목이 아니라 한방의료기관에서만 쓸 수 있는 한약재다.
결국 약과 식품의 경계를 확실히 하는 게 해결방안이다. 장동민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하늘땅한의원장)는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중국과 대만, 일본은 그래도 식약공용품목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다"며 "약으로서의 효과가 강력하거나 논문을 통해 부작용이 밝혀진 한약재는 식약공용품목에서 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당국자는 "식약공용품목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걸 막기 위해 재분류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당분간은 소비자 스스로가 좀더 똑똑해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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