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접전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자 정진선(28·화성시청)은 피스트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소리 내어서 엉엉 우는 남자의 눈물은 아름다웠다. 감정이 북받쳐 오른 이유는 지난 달 간 내 담석 수술을 받았던 아버지와 펜싱의 재미를 알게 해준 양달식 화성시청 감독 그리고 주말도 없이 함께 훈련에 매진한 이상기 대표팀 코치 때문이었다. 그 동안 각고의 노력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자 정진선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펜싱 남자 에페의 대들보인 정진선은 2일(한국시간)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에페 개인전 3·4위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세스 켈시(미국)를 12-11로 꺾었다. 세계랭킹 15위인 그는 종료 49초를 남기고 아쉽게 점수를 내줘 11-11로 맞선 채 연장에 돌입했다. 정진선은 주특기인 발 찌르기로 승부수를 걸었다. 상대는 193㎝의 장신이라 쉽게 선제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슴을 노리기보다 가장 가까운 발을 공략해서 연장 종료 20초를 남기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로써 정진선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이상기에 이어 12년 만에 남자 에페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첫 번째 올림픽 출전이었던 2008년 베이징 대회 직전에 세계랭킹 5위까지 오르며 메달 가능성을 부풀렸던 그는 '복병' 파브리스 자넷(프랑스)에게 일격을 당해 무려 4년을 기다려야 했다. 에페 에이스 자리도 박경두(익산시청)에게 내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당당하게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믹스트존(인터뷰 구역)에 와서도 울음을 참지 못한 그는 눈 주위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버지가 지난 달에 담석 수술을 했는데 가보지도 못했다. 지금은 퇴원했는데 올림픽 준비 때문에 통화조차 하지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왈칵 쏟아냈던 그는 "제가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며 또다시 흐느꼈다. 그 동안 남몰래 흘려야 했던 눈물이 모든 게 끝나자 저절로 흘러 내렸다.
비록 런던에는 오지 못했지만 꼼꼼하게 전략 분석을 해주고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준 양달식 화성시청 감독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양달식 감독님은 고1 때 칼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가르쳐준 선생님"이라고 설명했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꼽았다. 그는 "제 자신을 이기는 게 가장 힘들었다. 성격이 밝은 편인데 항상 좋았던 것만 생각하고 견뎌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라며 들뜬 마음으로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런던=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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