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잘 몰랐던 사람들은 '기적의 금메달'이라고 했다. 하지만 송대남(33ㆍ남양주시청)은 "아웃사이더가 아니다"라고 당당히 외친다. 삼수 끝에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해 정상에 오른 사나이의 이야기다.
2일(한국시간) 런던 엑셀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유도 90㎏급에서 송대남이 금메달을 따자 '비주류', '2인자'의 꼬리표를 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33세의 많은 나이에 어떻게 정상에 올랐고, 비주류의 아픔을 털어낼 수 있었냐"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송대남은 '노(NO)'라고 일축했다.
"그 동안의 한을 푼 건 맞지만 4년 동안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피땀을 흘렸다. 또 올림픽에 나오는 선수라면 누구든지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송대남은 처음 도복을 입은 12세 때부터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하나의 꿈만 보고 달려왔다. 그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오직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힘든 훈련을 견딜 수 있었고 동기 부여가 됐다"고 설명했다. 마침내 꿈을 이룬 송대남은 오히려 "정말 여기가 끝이에요. 더 없나요"라고 말할 정도로 어떤 상대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 동안의 노력을 들여다 보면 송대남의 금빛 비결을 알 수 있다. 그는 유도 대표팀에서 '초등학생'으로 통한다. 오후 10시면 송대남의 시계 바늘은 멈추기 때문. 장성호 대표팀 코치는 "마치 아이 갔다. 오후 10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40분이면 일어나 어김없이 훈련을 준비한다"며 '바른 생활 사나이'의 일상을 설명했다.
열심히 한 만큼 보상도 뒤따랐다. 경민중ㆍ고와 청주대를 거친 그는 '유도 천재'라 불렸다. 국내 대회를 싹쓸이하며 '유도 명문' 용인대와 한체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2008년에는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2004, 2008년 올림픽 선발전에서 탈락했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팬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2008년 81㎏급으로 뛰었던 송대남은 김재범(한국마사회)의 등장으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2010년 11월 무릎 수술로 인공 인대를 이식하는 등 선수 생명의 위기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2011년 3월 90㎏급으로 전향을 결정했고 177㎝의 크지 않은 신장을 극복하기 위해 근력 훈련에 매달렸다. 지난해 코리아컵 국제유도대회에서 전 경기 한 판승으로 우승하며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고 마침내 꿈을 이뤘다. 이젠 정상에 섰고, 국제대회 은퇴를 선언했다.
런던=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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