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위치한 중소조선사인 A사는 2009년8월 유럽 선사로부터 벌크선 한 척을 수주한 이후 3년 동안 단 한 건의 수주실적도 없다. 지난해 11월 말 발주사에 선박을 인도한 뒤론 아예 일감이 끊겨 사실상 영업중단 상태다. A사 관계자는 "전체 직원의 70%가 급여의 절반만을 받으며 수주활동에 매진하고 있으나 물량 자체가 없어 언제쯤 형편이 나아질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중소 조선사들의 위기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세계 1,2위를 다투는 대형조선사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소조선사들이 이대로 몰락한다면 조선업의 균형발전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일 한국수출입은행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소 조선업계(수출용 강선건조 기준)가 수주한 선박 수는 총 14척에 불과했다. 수주액은 7억1,0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72%나 격감했다. 2007년 세계 조선경기가 최고 호황일 대 연간 수주액이 262억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재앙 수준이나 다름없다.
당시 영국의 조선ㆍ해운분석기관 클락슨에 등록된 국내 중소선사는 27개. 하지만 현재 수출 업체로 남아있는 곳은 6,7개 뿐이다. 지난 2월 경남 통영에 있는 삼호조선이 파산한 데 이어 3월에는 52년의 역사를 가진 세광중공업도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조선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최근 2년간 중소 업체 대부분이 도산하거나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다"며 "명맥을 유지하는 곳도 수출은 포기하고 기존 배를 고치는 수리조선소로 전환한지 오래"라고 말했다.
물론 중소 조선사들이 고전하는 건 조선 시황이 워낙 안 좋은 탓이 크다. 올해 상반기 세계 선박 발주량에서 중소업체가 주력으로 삼는 벌크선과 중소형 탱커, 컨테이너선 등 일반 상선분야는 발주가 거의 전무했던 2009년 비슷한 490만CGT(표준화물환산톤수)를 기록했다. 대형조선사들도 극심한 수주가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중소조선사들이 일감을 따낸다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외부 요인 못지 않게 잘못된 시장예측도 업계 전체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조선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든 2010년 유독 벌크선 시장만 호황인 기현상이 발생했는데 이 때 상황 판단을 잘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정부가 영세 중소조선사의 도산을 막으려고 선주들을 부추겼고, 이에 편승해 국내 중소조선사들이 수주에 열을 올렸는데 올해 그 건조물량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오자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 동안 국내 중소조선사들은 벌크선에만 매달리며 다른 선박수주에는 별로 영업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정작 벌크선이 공급 과잉으로 더 이상 추가물량은 나오지 않다 보니 조선사들은 아예 일감이 끊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소 조선사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차피 중국 업체가 일감을 싹쓸이하는 벌크선 분야는 과감히 포기하되, 그나마 2,3년 뒤 회복세를 기대할 수 있는 탱커 영업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생존이 급선무인 중소 조선업사들에는 마진을 최대한 낮추더라도 수주를 지속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구조조정이 자연스레 이뤄진 만큼 공동 영업조직을 만들어 특화 전략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