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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회색 가장자리에서

입력
2012.08.0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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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주폭' 관련 글을 쓰고 나서 서울경찰청에서 전화를 받았다. 항의를 받는가 했더니 주소를 묻는 전화였다. 일러 드린 주소로 일선 경찰들이 어떻게 '주폭'을 척결하고 있는지에 대한 백서와 형사 분들의 수기가 동봉되어 있는 우편물이 도착해 한참 시간을 들여 읽었다. 힘없는 모녀 둘이서 경영하고 있는 작은 술집에 날마다 찾아와서 장사를 방해하던 '주폭'이 이번 경찰 캠페인을 통해 처리된 후 마음 놓고 장사를 할 수 있게 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는 소상인 모녀의 이야기 같은 것이 두꺼운 백서에 가득했다. 이런 사람들에게야 주폭 척결이라는 말이 옳고말고다. 백서를 덮고 현장에서 일하는 형사분들을 응원하는 마음은 변함없다고 답장을 써서 부쳤다. 오랜만에 우표를 써서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치니 기분이 감상적이 되었다. 아날로그한 일을 해서 그런가, 하고 감상을 떨쳐 버리려 하니 잘 안 떨쳐진다. 감상적인 게 아니라 마음이 뭔가 찜찜한 것이다. 서울경찰청의 배려로 이번 캠페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잘 알게 됐으나, '주폭'이라는 단어와 그 척결 대상이 다소 모호한 것이 그 찜찜함의 원인이었다. 일괄 척결하고자 하는 '주폭'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주취폭력배'가 아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혼내 주자, 라는 말은 누가 들어도 옳다. 서울경찰청에서 설명하는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인물을 척결하자는 말도 옳다. 그렇다면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의 차를 압수한다는 아이디어는 옳은가.

물론 주폭 때려잡자거나, 음주운전하는 놈들은 차 다 뺏어버려야 돼, 라는 문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소위 '앗쌀'하고 화끈하다. 이제 백사장이나 공원에서도 음주가 금지된다고 한다. 이게 옳은지 아닌지 내 깜냥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는 좀 더 술을 구하기 어려워진다면 나를 포함해 알코올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원에서 바람을 쐬며 맥주 한 잔하고 싶은 사람들이 음주 문제가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들의 권리를 규제받아야 하는가까지 생각이 나아가면 애매해진다. '주폭' 문제도 실제로 이 캠페인으로 잡혀간 사람들이 술 문제만 겪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복잡하다. 저번에 경찰에게 난동을 부렸지만 구속되지 않은 새누리당 당직자가 풀려난 이유는 그의 신분과 주거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쩌다 걸린 술 문제를 빼면 사회적으로 자기 몫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주폭 일제 단속령에 잡혀간 사람들은 술 문제 빼고도 문제가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문제 많은 인간, 할 때의 그런 뉘앙스가 아니라 주거 문제, 의료 문제, 경제적 문제 같은 문제들 말이다. 실제로 검거된 주폭들이 알코올 중독 치료원에 입소하거나 병원을 찾지 못한 까닭은 대부분이 직업이 없는 경제적 빈곤 탓이 많다고 한다. 즉, 그들의 술 문제는 그들이 가진 수많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신분과 주거가 안정된 사람들의 술 문제야 본인 탓으로 돌리고 그를 지탄하면 되지만 이럴 경우 보다 다각적 접근, 유기적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체통 앞에서 경찰에 부치는 편지를 들고 있다가 이런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니 50cc이하 오토바이 일제 면허 의무화를 봤을 때 그랬다. 물론 모든 차량은 이렇게 번호판 부착과 보험 가입 등을 의무화하는 것이 옳다. 그게 맞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오토바이 등록하느라 닭값 올랐다면 화가 나는 게 인간이다. 이런 종류의 생각들은 나이를 먹으면 명료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서른 넘은 후의 신기한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도로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욕하면서 통닭이 총알같이 오길 바라고, 자유로나 올림픽도로를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를 죽을려고 환장했다고 손가락질하면서 퀵 아저씨가 '퀵'하게 오기를 기다린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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