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아이스크림을 찾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아이스크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빙그레의 대표적 아이스크림 ‘메로나’는 편의점에서 900원에 팔린다. 하지만‘아이스크림 50% 할인’을 써 붙여 놓은 동네 슈퍼에서는 500원에, 대형마트에서는 460원꼴(묶음판매를 1개 단가로 환산)에 팔린다.
소비자들은 도대체 판매 장소에 따라 왜 이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거의 모든 제품이 유통 채널에 따라 대형마트에서는 좀더 싸게, 편의점에서는 좀더 비싸게 팔리고 있지만, 아이스크림처럼 가격이 두 배나 차이 나는 제품군은 거의 없다. 도깨비방망이 같은 아이스크림의 이중가격체계에 대해 지적도 많았고,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빙과업계 및 유통업계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가격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게 된 것은 국내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던 2000년대 초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동네 슈퍼는 대형마트나 편의점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점포와 경쟁하기 위한 ‘미끼상품’으로 아이스크림 할인판매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10% 할인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폭이 커져 50% 할인까지 나타났다.
동네 슈퍼 상인들은 처음에는 마진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방식으로 할인판매를 했지만, 점차 빙과업체에 대해 “권장소비자가격을 올릴 때 공급가를 적게 높여달라”고 압박했다.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600원으로 20% 인상되더라도 동네 슈퍼 공급가는 300원에서 330원으로 10%만 올리도록 하는 식이다.
이러한 일이 거듭되면서 소비자가격에 계속 거품이 끼었다. 예를 들어 1,000원짜리 소비자가격이 붙어 있는 빙과라 해도 공급가는 450원 정도이므로 슈퍼는 50% 할인해 500원에 팔면서 50원의 마진을 누릴 수 있게 된 것. 사실상 권장소비자가격 자체가 도저히 ‘권장해서는 안되는’ 거품가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2010년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지 않는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도입된 데는 이런 비정상적 가격구조를 고쳐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정부는 거품투성인 권장소비자가격을 없앨 경우 슈퍼들이 ‘50% 할인’문구를 내걸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슈퍼, 편의점, 대형마트 등이 가격경쟁을 할 것이므로 전체적으로 하향 정상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동네슈퍼는 여전히 ‘50% 할인’문구를 버젓이 달아놓았고, 시중에서 판매되는 아이스크림 가격은 오히려 올라갔다. 결국 시행 1년 만에 오픈프라이스는 폐지됐다.
다음으로는 빙과업계 1위인 롯데제과가 나섰다. 올해 4월부터 일부 빙과제품의 권장소비자가격을 40~50% 가량 낮춰 표기하고, 이를 슈퍼와 편의점 등 모든 유통채널에 적용되는 ‘정상가’로 만들겠다고 시도한 것. 유통업체의 판단에 따라 10% 정도의 할인은 가능하지만 50%의 대폭 할인은 불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 권장소비자가격이 2,000원이었던 ‘설레임’의 소비자가격은 1,000원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유통업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우선 동네 슈퍼들은 ‘50% 할인’이 불가능해진데다 공급가격이 상승해 버틸 수가 없다고 반발했다. 그 동안 동네슈퍼와 큰 차이 없는 가격에 공급 받아 권장소비자가격대로 팔면서 50%가 넘는 마진을 누려왔던 편의점들 역시 하루아침에 마진 폭이 사라지자, 들고 일어날 기세다. 때문에 아직도 대다수 편의점들은 롯데제과의 정찰제를 거부하고 설레임을 종전 가격인 1,600원에 팔고 있다. 빙그레와 해태제과 등 다른 빙과업체들은 롯데의 정찰제 실험을 지켜보며, 어떻게 할지 고민만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는 정찰제로 가는 게 맞지만 워낙 이중가격체계가 깊게 뿌리 내려있어 정착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한 아이스크림 가격을 바꾸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얘기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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