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구체적으로 털어놓은 중국 공안당국의 고문과 우리 정부의 미온적 대응은 충격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김씨가 폭로한 전기고문, 잠 안 재우기, 물 안 주기, 구타 등 야만적 고문상황과 추호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중국정부의 몰염치는 현 중국의 인권수준, 나아가 국가수준을 한눈에 보여준다.
과거 불법조업단속 해경을 살해한 중국어민을 우리 경찰이 수사할 당시 중국이 제법 인권국가인양 합법적 권리보장 등을 소리 높이 요구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실소만 나올 뿐이다. 더욱이 중국 관영매체들이 "법에 따라 조사했다"는 자국 정부의 발표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반한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모양을 보면 중국은 아직도 멀었다. 이래 갖고는 중국이 아무리 경제력을 키우더라도 국제사회의 선도국가로 인정받는 것은 어림도 없다.
더 한심한 것은 우리 정부다. 김씨가 체포 한 달이 다 돼서야 처음 영사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부터 기막히다. 그의 말대로 영사접견권은 국제법상 엄연히 보장된 권리인데도 늑장을 피웠다는 건 변명의 여지없는 직무유기다. 영사접견 시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도 이를 외면해왔다든지, 도리어 김씨에게 (고문폭로에)신중하도록 압박했다든지, 나아가 외교부와 국정원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는 정황에 이르러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회의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외교부는 자국민 보호의 책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을 수없이 받아온 터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는 "고문의 사실관계를 밝히는데 외교력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실효성 없는 원칙론이나 되뇌고 있다.
정부는 비록 늦었고 현실적 한계가 있더라도 국제법상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김씨 고문문제를 제기,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해야 한다. 북한 핵과 탈북자 문제 등으로 중국정부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을 모르는바 아니나 이런 식의 무조건적 저자세 외교는 결국 장기적으로는 우리를 우습게 보이고 외교입지를 더욱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씨 고문문제는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관련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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